내일의 눈
이종섭 논란과 채명신의 교훈
국립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는 채명신 예비역 육군 중장의 묘가 있다. 관례대로라면 8평짜리 장군 묘역에 묻혀야 했지만 그는 사병들과 똑같은 1평짜리에 묻혔다. 사랑하는 부하들 곁에 묻히고 싶다고 한 고인의 뜻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6.25전쟁에 참전해 전공을 세웠다. 휴전 후에는 9사단 근무 중 상관이던 박정희를 만났고 5.16 군사쿠데타에도 가담했다.
그는 최고권력자에게도 할 말은 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트남전 참전도 처음에는 반대했다.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판단에서다. 박정희정권의 유신헌법 개헌 시도는 끝까지 반대했다.
결국 대장 진급에서 탈락해 중장으로 전역했다. 전역 후 주 스웨덴, 주 그리스, 주 브라질 대사 등을 두루 역임했다. 고인의 삶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해야 할 말을 하며 제복의 명예를 지켰고 진심으로 부하를 챙긴 것은 귀감이 되고 있다.
갑자기 채 장군 얘기를 소환한 것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최근 행보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육사 출신 이 전 장관 역시 중장으로 전역했고 짧지만 대사직도 역임했다. 그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향의 정책통이다. 장관으로 발탁됐을 당시 야당도 크게 반대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스텝이 꼬였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의 중심에 섰다. 그는 부인했지만 의혹은 커져만 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됐고, 장관직도 내려놓았다. 다음 순서는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3월 4일 주 호주 대사에 전격 임명됐다. 그에겐 출국금지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비난이 커지자 공수처는 약식조사를 했고, 법무부는 다음날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그는 10일 신임장 원본이 아닌 사본을 들고 도망치듯 호주로 떠났다.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런종섭’ ‘도주대사’라는 오명이 뒤따랐다.
총선을 앞둔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외교·국방·산업부 공동 주관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회의라는 급조된 일정을 명분으로 21일 귀국했다. 하지만 공관장 일정을 채 끝내기도 전에 사퇴했다. 임명부터 사퇴까지 딱 25일이다.
사퇴 이후도 매한가지다. 호주에 대한 외교적 결례, 방산협력 차질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없다. 대신 이 전 장관은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억울함만 묻어나왔다.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리면 된다. 그전에 상식을 벗어난 행보와 소동에 대해 사과가 먼저다. 외교부는 물론, 국방부에서조차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는 점을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정재철 외교통일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