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결과에 ‘의정 갈등’ 숨고르기
정부, 중대본 회의없고 브리핑도 취소 … 의료계, 한 목소리 ‘아직’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가운데 의정이 모두 상황 판단을 하며 전열을 다시 가다듬는 모습이다.
12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회의를 연다.
애초 한 단계 위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행정안전부 장관 주재로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대본부장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사퇴함에 따라 복지부 차원의 중수본 회의만 열린다. 정부 브리핑은 이날까지 사흘 연속 열리지 않는다.
정부로서는 여당의 총선 참패로 의료 개혁의 동력이 사그라들 위기에서 당분간 공개적 브리핑 없이 정치권의 동향을 살피며 향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의사출신 국회의원 중재 나서나 =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의사 출신 당선자들이 중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21대 국회에서 의사 출신 국회의원은 2명이었으나, 이번에는 8명으로 크게 늘었다.
지역구에서는 현역인 안철수(국민의힘) 의원이 경기 성남 분당갑에서, 강남구보건소장과 한국공공조직은행장 출신인 서명옥(국민의힘) 후보가 서울 강남갑에서 당선됐다. 의사 출신으로 국경없는의사회 등에서 활동한 차지호(더불어민주당)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부교수는 경기 오산에서 당선됐다.
각당 비례대표 중에는 더불어민주연합에서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국민의미래에서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과 한지아 재활의학과 전문의, 개혁신당에서 이주영 전 순천향대 천안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조국혁신당에서 김선민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등 5명이 의사 출신이다.
진영으로 보면 범여권과 범야권에서 각각 4명이 당선됐다.
일각에서는 각자의 입장이 모두 달라 교착 상태에 빠진 의정 갈등 해소에 큰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의대 증원과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국내 의료시스템의 개편과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대란을 해결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중재자 역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대화 창구도 못만든 의료계 = 문제는 국회에서 중재하더라도 한 목소리를 못내는 의료계 현실로 인해 당장 대화가 진전되기는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정 갈등의 핵심인 전공의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여기에 대표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소위 ‘신구 갈등’ 중이다.
실제로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전면 백지화’ 등 7대 요구의 수용 없이는 의료 현장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됐다. 하지만 각자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특히 전공의들의 7대 요구는 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 당선인과 갈등을 빚어온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브리핑을 열고 총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의협 비대위는 애초 12일 전공의·의대생·교수단체와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기로 해 정부와 대화에 나설 ‘단일 창구’가 마련된다는 기대감을 키웠으나 각 주체 간의 불협화음으로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의협 비대위는 결국 단독으로 브리핑을 열고 여당의 참패 원인을 지적하면서 의대 증원의 원점 재검토를 다시 주장할 계획이다.
◆교수단체 법적 대응 진행 중 =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단체들은 대정부 법적 대응에 나서는 한편 대화 노력도 이어간다.
먼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12일 오후 1시까지 각 대학 총장으로부터 답변을 들은 뒤 헌법소원에 나설 예정이다. 앞서 전의교협은 각 대학 총장에게 의대생 증원을 무효로 하기 위한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전의교협은 11일 40개 의대 명의의 성명서를 내고 “대학 총장들께서는 학내 의대 증원 절차를 중단하고 교육부로부터 받은 증원분을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는 정원을 배정했지만, 증원 시행 계획과 입시요강을 발표하는 것은 각 대학의 몫”이라며 “이제는 대학이 나서야 한다. 대학 총장들은 증원 절차를 중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것이 의대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고 대학의 자율을 지키는 길”이라고 밝혔다.
◆교수 비상대책위 회장 교체 = 또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현 사태의 정상화와 전공의 및 의대생의 복귀를 위해 울산대 의과대학 비대위원장 최창민 교수를 2대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전의비는 최 위원장이 2000년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어 전공의와 소통하고 의료계 단체와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최 위원장은 “복잡한 의료계의 현 상황에서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며 “의료계와 정부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고, 의료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줄지 않는 의대생 휴학계 = ‘집단 유급’ 우려에 의과대학들이 줄줄이 개강한 가운데 ‘유효’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이 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9~10일 5개교, 24명이 유효 휴학을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각 의대는 집단 유급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2월이었던 개강을 계속해서 미뤄왔으나 더 이상 개강을 연기할 수 없다고 보고 속속 수업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학생들은 돌아올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