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과 노동개혁
야당 노란봉투법 재추진, 대통령 거부권 행사할까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 여야 모두 찬성
“노동정책 국정기조 변화없으면 사회적 대화도 걷돌거나 파탄”
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4.10 총선은 윤석열정권 심판 선거였다. 국민의 표심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반성과 사과, 협치 등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했다. 노동계는 정부과 여당을 향해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 잘못됐음을 확인시킨 선거”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도 국정기조 변화없이는 윤석열정부의 근로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개혁은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재추진과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22대 국회의 최우선 의제로 꼽았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를 원청기업 등으로 확대해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손배소송을 막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11월 노란봉투법은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빠른 시일 내에 재추진할 것”이라며 “노동·사회 진영이 함께 하는 연대체를 구성해 2024년 내에 입법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이 아닌 다른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반대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은 헌법과 민법의 기본원리와 맞지 않아 노조법 체계 전반의 정합성에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논의를 통해 다른 제도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등 야당이 노란봉투법을 재추진할 경우 여야의 입장차가 뚜렷한 법안이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커다란 국정기조 변화 없이는 22대 국회에서도 법제화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근로기준법 확대’ ‘주4일제’ 여당 “사회적 대화로” =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대체로 찬성의사를 밝힌 바 있어 22대 국회에서 추진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입장”이라며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 결과를 반영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은 올해 1월 27일부터 50인(5~49인) 미만 중소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 2년 추가 유예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여당에게 중대재해법 적용 추가 유예를 논의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3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법 유예기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정부의 공식사과와 관계자 문책,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포함한 구체적 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추가 유예 이후 모든 기업에 적용한다는 경제단체의 확실한 약속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요구사항을 추가로 수용한다면 22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다만 민주당이 양대노총의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수급개시 연령과 법정 정년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소득공백을 메우기 위한 65세 정년연장 법제화에 대해서는 야당들은 원칙적으로 찬성의사를 밝혔지만 국민의힘은 단계적 연장안을 제시했다.
국민의힘은 “고령화 시대에 정년을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것은 당연히 고려돼야 할 정책”이라면서도 “정년 65세 법제화보다는 노사협의를 통한 자율적 계속고용제도(정년연장·재고용)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중소영세기업부터 법정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에 맞춰 연장하겠다”고 했다.
주 4일제 도입과 장시간 노동 해소에 대해서도 여야의 입장이 갈렸다. 민주당은 ‘주 4(4.5)일제 등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설치·운영해 ‘실노동시간단축 로드맵’을 만들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입법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주 4일제 도입에 반대했다. 다만 ‘유급 법정공휴일’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국민의힘은 “주 4일제 입법은 근로자의 임금감소로 직결되고 다수의 중소기업은 신규인력 확보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비용 등의 문제로 노사 모두에게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난항 예상 = 반면 윤석열정부는 지난해 3월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도록 ‘1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의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유연화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가 국민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정부가 근로시간제 개편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면서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전체 업종 유연화에서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유연화하는 근로시간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복귀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로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도 쟁점 부상 = 게다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과정에서 정부의 ‘업종별 차등 적용’ 주장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2월 한국은행이 돌봄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업종별 차등 적용’이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다. 반대로 노동계와 야당은 업종별 차등 금지, 특수형태근로(특고)·플랫폼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등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많은 노동의제에 대해 국민의힘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일 열리기로 한 경사노위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위 1차 전원회의’가 새로운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채 연기됐다.
앞서 2월 노사정은 경사노위에서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정년연장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노동보다 더 급한 현안들 쌓여 =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밝은 한 전문가는 “사회적 대화가 되려면 인적쇄신과 국정기조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철학 등을 볼 때 더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게다가 노동보다 더 급한 의정 갈등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노사정 사회적 대화 전망이 밝지 않다”고 진단했다.
다른 전문가도 “총선결과를 보면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의 입장에 보면 경사노위 활용 범위가 많이 축소될 것 같다”면서 “한국노총 입장도 경사노위를 통해서 의미 있는 제도적인 진전이 보이지 않으면 형식적인 참여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정부와 여당이 어떤 노동정책 기조로 가지느냐에 따라 격랑에 빠질 수도 있고 사회적 대화가 촉진될 수도 있다”면서 “노동의제들을 어느 정도 친노동적으로 전환한다면 사회적 대화는 촉진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용산 대통령실이 당초 사회적 대화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고 전문가 중심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다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뒤인 지난해 11월부터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사회적 대화가 복원된 사례를 들었다. 다만 사회적 대화를 정부 노동개혁의 수단이나 디딤돌로 삼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