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총선참패’ 대통령의 유산
‘윤석열 대통령은 퇴임 후 국민에게 무엇으로 기억될까.’ 이번 총선을 지켜보는 동안 머릿속을 맴돈 생각이다. 정권 막바지에나 들 법한 의문이 충격적 패배로 너무 일찍 찾아왔다. 그동안 윤 대통령을 지켜보며 소모한 에너지와 감정이 헛된 것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불쑥 커졌다. 출입기자뿐만 아니라 모든 대통령실 구성원들이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2년 전, 여소야대 속에서 갓 임기를 시작한 정치신인 대통령에게 국민은 대단한 치적을 주문하지 않았다. 그저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열리길 바랐다. 윤 대통령도 그러겠노라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용산 대통령실 시대’를 열었을 때는 실질적 탈권위·국민소통 대통령의 첫 탄생을 목격하는 듯했다. 대통령과 참모들 간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내부소통이 활발해져 국정 효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설명도 와닿았다. 같은 시기 시작한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 역시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잡는다면 국정 소통의 획기적 전환이 될 수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질문, 돌발적 답변으로 좌충우돌하긴 했지만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시행착오는 줄여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올해 24차례 생중계된 민생토론회는 ‘관권선거’라는 야당 반발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전례없던 이 행사가 윤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다음 대통령도 따라하지 않겠느냐 싶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다. 공정·상식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부인 김건희 여사와 측근들 문제에 초지일관 ‘박절하지 못했던’ 윤 대통령 앞에서 일찌감치 무너졌다.
용산시대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만에 자신의 출근통로와 기자실을 차단하는 벽을 세웠다. 기자와의 쌍방소통은 같은 시기 도어스테핑 포기로 끝났다. 한편에서는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던 청와대가 국내 관람객 다 빠지고 이제 중국인 관광객들 차지가 됐다는 기사가 보인다. 다음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겠다고 해도 딱히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 같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물리적 거리 단축으로 높아진 업무 효율이 어떤 성과로 이어졌기에 총선 결과가 이 모양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공들였던 민생토론회도 끝내 민심의 반향 없이 공수표가 될 판이다.
윤 대통령은 남은 3년여 동안 적이나 다름없던 거대야당, 그리고 원심력 커진 여당을 파트너 삼아 일해야 한다. 총선 결과를 뒤집을 기회조차 임기 내엔 없다.
이제 그는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원점에서 분별해야 한다. 뭐든 이루고 남기겠다면, 협치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여의도 문법은 모른다”고 했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만약 지금도 그렇다면 큰 불행이다.
이재걸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