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치 위기 어디서 시작됐나 ③ 수직적 당정관계
‘윤심’만 좇다가 ‘민심’과 멀어진 국민의힘
용산 뜻대로 이준석 내쫓고 김기현 선출 … 국정 패착엔 ‘침묵’
대통령·당 지지율 동반 ‘저조’ … “정부 비판하는 대표 나와야”
국민의힘의 4.10 총선 참패 원인으로는 ‘수직적 당정관계’가 가장 많이 꼽힌다. 민심을 따라야 할 여당이 ‘윤심(윤석열의 마음)’만 좇다가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 윤 대통령은 임기 2년 동안 여당을 마음대로 부렸고, 여당은 대통령 눈치 보는 데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여당에서는 뒤늦게 “수직적 당정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는다.
17일 여권에서는 총선 참패 원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분출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이 꼽히는 건 ‘수직적 당정관계’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당정은 말 그대로 ‘수직 관계’였다. 윤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만 여당이 움직인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윤 대통령과 불편한 사이였던 이준석 당시 대표의 축출에 착수했다. 여당 윤리위는 이 전 대표에게 당원권정지란 중징계를 내려 사실상 대표직에서 몰아냈다. 여당은 ‘윤 대통령 친구’인 정진석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3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심’이 낙점한 김기현 의원을 대표로 만들기 위해 대표 선출 당헌까지 바꾸는 무리수를 뒀다. 친윤 초선의원들은 연판장을 돌리며 나경원 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저지했다. 친윤은 전당대회에 출마한 안철수 의원을 거칠게 공격했다. 여당이 “김기현 대표를 만들라”는 ‘윤심’ 받들기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여당은 지난해 말에는 윤 대통령 최측근 한동훈 전 법무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 역시 ‘윤심’으로 읽혔다. 윤석열정부 2년 동안 윤 대통령 마음대로 집권여당 대표를 내쫓거나 꽂은 것이다.
여당은 윤 대통령의 국정 패착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했다. △검사 중용 인사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안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한일관계 복원과 원전 오염수 방류 △이태원 참사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김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이종섭 대사 임명 △875원 대파 발언 등 끝없이 이어지는 국정 패착에 대해 여당은 쓴소리는커녕 감싸기에 급급했다. 민심의 눈치를 봐야할 여당이 대통령 눈치만 본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당정이 과도한 밀착관계를 이어가자 지지율도 동반 추락하는 결과를 빚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 ‘반짝 50%대’를 기록한 이후 2년 동안 20~30%대의 저조한 국정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다. 여당 지지율도 취임 초에만 40%를 기록한 뒤 줄곧 30%대에 갇혀있다. 밀착관계인 대통령과 여당이 지지율에서도 동조화 현상을 보인 것. 민심은 당정을 한묶음으로 보고 외면한다는 분석이다.
여당에서는 “당정관계를 바꾸자”는 요구가 분출한다. 안철수 의원은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정부는 집행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민심과는 약간 떨어져 있고 당은 지역구 의원들 때문에 민심을 잘 아니까 만약에 정부에서 민심과 다른 결정이나 인사를 하게 될 때 그 점을 (당이) 지적하고 올바른 정책이나 올바른 사람을 추천하는 게 당의 역할이고 그렇게 되면 양쪽 다 (지지율이) 올라간다. 그런데 그걸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6~7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수평적 당정관계’를 이끌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조친윤 권성동 의원도 16일 YTN에서 “정부·여당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협력을 하지만 이제는 당이 정부를 견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정부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배짱 있는 대표가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여당내에서 차기대표 1순위로 안철수·나경원·윤상현 등 ‘비윤’ 중진의원이 꼽히는 이유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