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마이웨이’ 행보에 민주당 ‘독주’ 맞대응
이재명 “대통령 말씀에 가슴 막히고 답답”
행정집행 강제하는 입법권한 활용 예고
국회 원구성 주도권 선언 … 갈등구조 재연
22대 총선이 끝난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이 사생결단식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총선 패배에 따른 수습책을 내놓지 않고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야당은 총선에서 얻은 다수의석을 배경으로 정부여당을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2년 간 출구를 찾지 못했던 갈등구조가 22대 국회에서도 재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모자랐다”고 말했다. 4.10 총선 후 처음 나온 윤 대통령의 총선평가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았다. 특히 야당과 정치권은 국정운영 방향 전환 등 쇄신기대와는 거리가 멀다며 날을 세웠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7일 “대통령의 말씀을 들은 다음부터 가슴이 확 막히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며 “어떤 분하고 통화하며 의견을 물었는데 ‘마음의 준비를 더 단단하게 하고 안전벨트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벨트를 준비해야 할 상황이 맞는 것 같다”며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홍익표 원내대표도 “헌정사상 최대의 야당 의석수는 국회를 국정운영의 한축으로 인정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윤 대통령 발언은)오만과 독선에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거의 마이웨이 선언처럼 들렸다”고 비판했다.
총선 완승 후 ‘겸손모드’를 강조했던 민주당은 정부여당에 대한 강력한 압박으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입장과 태도가 총선 전과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경제 위기 대응을 강조하며 신용 사면, 서민 금융 지원 등 정책을 입법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표는 17일 오후 열린 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에서 행정 집행이나 사법 절차 등을 통하지 않고 자동으로 집행력을 갖는 ‘처분적 법률’을 활용하는 방안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민간 가계, 기업이 악화하니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역행, 반대로 가는 정책”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가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국회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발굴하면 좋겠다”며 “예를 들면, 논란이 있는 부분인데 ‘처분적 법률’을 활용할 필요가 있지 않나”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신용 사면 이런 건 정부가 당장 해야 하는데 안 하니 입법으로 신용 사면 조치해도 될 것”이라며 “서민 금융 지원도 예산으로 편성해서 해야 하는데 안 하니까 의무적으로 일정 정도 제도화하는 거랄지, 국회 차원에서 입법으로 시행할 수 있는 것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입법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서 정부의 행정 집행력을 강제하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읽힌다. 이 대표는 이에 앞서 오전 민주당 최고위 회의에서 “선거 때 약속한 민생 회복 지원금(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을 포함한 민생 회복 긴급 조치를 제안한다”면서 “윤석열정부는 이번 총선에서 민생을 살리라는 국민의 절박한 외침에 말로만 민생, 민생, 민생, 세 번 외친다”고 지적했다. 민생회복 지원금 13조원 등 예산이 필요한 것에 대한 비판적 주장을 겨냥해선 “국민 다수에게 필요한 정책을 하는 것을 누가 포퓰리즘이라고 하나”라고 반문했다.
정부여당을 겨냥한 압박은 22대 원구성 논의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22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해 “법사위와 운영위는 이번에는 꼭 민주당이 갖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재와 같은 상임위 구조라면 법사위원장을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맡는 게 맞고 그게 이번 총선의 민심”이라며 “운영위도 역시 국회 운영은 다수당이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이후 원구성에서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민주당 몫으로 정했다가 후반기 원구성에서 법사위원장직 등을 국민의힘 몫으로 돌렸다. 후반기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추진한 법안이나 특검법 등이 법사위에 막혀 진척을 보지 못한 상황이 반복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국민의힘이 ‘협치를 포기한 폭주 선언’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밀고 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21대 하반기 국회가 전혀 작동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법사위 문제가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며 “법적 절차, 입법 과정의 절차를 지연시키거나 이런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이건 안 되는 수준으로 만들어 놨다”고 지적했다. 22대 국회 원구성 등을 주도할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갖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 역시 법사위원장직 확보를 상수로 두고 있다. 한 3선 의원은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방치하면서 여당을 기다리는 오류를 반복하지 말라는 것이 이번 총선 민심”이라며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몫인 국회의장직도 중립성 보다는 ‘다수당과 호흡’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주당 후보로 거론되는 조정식·추미애 의원 모두 ‘총선 민의’를 내세워 실행력을 내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22대 국회 첫 원내대표를 5월 3일 선출하기로 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차기 원 구성 준비 등을 위해 조속히 원내대표를 선출할 필요가 있다는데 뜻을 함께 했다”고 전했다. 원내지도부를 조기에 꾸려 22대 국회 운영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고 가겠다는 취지다. 차기 원내대표 후보군으로는 김민석·남인순·박범계·서영교·한정애 의원(4선), 강훈식·김병기·김성환·김영진·박주민·박찬대·송기헌·조승래·진성준·한병도 의원(3선)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