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치 위기 어디서 시작됐나 ⑤ 이념 편향
오른쪽 날개만 고집…중도층 ‘외면’으로 추락 위기
윤 대통령, 이념전쟁 앞장 … 한동훈 “종북세력 막아야”
“보수 유튜버·태극기부대와 절연해 대선 이겼는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입만 열면 “반국가세력·공산세력·종북세력 척결”을 외쳤다. 이념전쟁을 자처했다. 동시에 “부자감세”란 비판을 무릅쓰고 감세와 부동산규제 완화에 주력했다. 국정운영이 보수에 편향되면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대목이다.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이 이념 편향적 국정에 염증을 느끼고 여권에 등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4.10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실시한 조사(3월 26~28일)에 따르면 중도층의 여권 이탈 현상이 뚜렷했다. 4.10 총선 결과 기대를 물어본 결과, ‘현 정부 지원 위해 여당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 40%, ‘현 정부 견제 위해 야당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 49%였다. 보수층은 정부지원론에, 진보층은 정부견제론에 쏠렸다. 문제는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층의 선택이었다. 중도층에서 정부지원론은 31%에 그친 반면 정부견제론은 56%에 달했다. 중도층이 압도적으로 정부견제론을 택한 것이다.
중도층의 선택은 여권의 보수편향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강성 보수성향을 드러내면서 ‘좌파와의 전쟁’에 매진했다.
평소 보수 유튜브를 즐겨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은 총선 직전인 지난달 26일 “반국가세력이 국가안보를 흔들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겠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이에앞서 지난달 19일 “종북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우리 뿐”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 모두 야권을 ‘반국가세력’ ‘종북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총선을 ‘좌우 대결’로 본 것이다. 다수의 유권자는 총선을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인식하는데, 여권 수뇌부는 자성 대신 “좌파 척결”만 외치면서 민심과 엇갈렸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강성보수 성향을 드러냈다. △“반국가세력이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지난해 6월)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지난해 8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시도(지난해 9월) 등이 잇따랐다. 대통령이 앞장서 이념전쟁을 부추긴 것이다. 한 위원장도 총선 유세에서 툭하면 “종북세력” “운동권세력”을 강조하면서 색깔론을 띄웠다. 탈이념적 지향이 강한 중도층이 거북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여권은 기득권층을 겨냥한 정책에만 매달렸다. 부유층과 대기업이 주로 혜택을 보는 △상속세 완화 △배당 확대 기업 법인세 감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기 △다주택자 규제 완화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기업구조조정 리츠 세제 지원 등 감세와 부동산규제 완화책을 쏟아냈다. 야권은 “대기업·부자감세” “기득권 규제완화”라며 반대 뜻을 드러냈다.
여권은 보수편향성을 드러내면서 중도확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도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안철수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 등을 전면에 세우지 않았다. 윤상현 의원이 18일 주최한 ‘총선 참패와 보수 재건의 길’ 세미나에서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보수 유튜버와 절연하고 태극기부대와 절연하고 다시 (중도로) 돌아가서 (지난 2022년) 재보궐 선거를 이겼고 대선을 이겼고 지방선거를 이겼다”며 “그러고는 (지금은) 다시 또 돌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권이 강성보수로 회귀하면서 중도층 이탈과 총선 패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