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목표는 ‘기업경쟁력 제고’…이사회 역할 중요”
기업지배구조 개선 … 일반주주 이익 보호해야
국민연금 등 연기금 및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
학계 전문가, 금융위 ‘감사인 지정 면제’ 비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장기적 목표는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학계 전문가들은 기업 밸류업이 성공하려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일반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과 행동주의펀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금융위원회의 ‘감사인 주기적 지정 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밸류업의 성패는 ‘이사회’에서 판가름 = 한국증권학회는 23일 여의도 파크원 NH금융타워2 4층 그랜드홀에서 ‘기업 밸류업 성공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정책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이관휘 서울대학교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의 목표는 장기적인 기업경쟁력 제고로 단기적 주가 부양이 돼서는 안 된다”며 “궁극적으로 기업 펀더멘털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터널링(대주주 일가가 소유한 비상장사로 상장사의 이익을 내부거래를 통해 이전하는 수법)으로 인한 대리인 비용을 줄여야 한다”며 “밸류업의 성패는 ‘이사회의 문제’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기업의 자율성에 맡긴 밸류업에 대해 규제와 자율은 각 영역별로 명확히 구분해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주주와 소통, 이사회 개선, 감시와 처벌 등은 규제를 통해 강제할 부분”이라며 “주주환원과 수익성 개선 방안 등은 자발적으로 유도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강창모 한양대학교 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기업의 내재가치 성장을 위해 일반주주 이익 보호와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며 “주주환원 정책 및 일반주주 이익 보호 정책에 대한 기업의 공시 책임 강화, 이사회의 일반주주에 대한 책임 강화, 장기적 기업가치 증대를 목표로 한 기관투자자의 주주관여 활동 관련 입법 및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주주이익에 대한 경영진 및 이사의 충실의무 규정과 일반주주의 감사위원에 대한 해임·선출권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배주주의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관투자자의 행동주의 및 적극적인 주주관여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밸류업 정착 위한 7가지 개선 방안 추가 = 두 번째로 주제 발표를 한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ESG운용부문 대표는 “해외 다른 국가에 비해 느슨한 내부거래 공시기준 강화,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 제고, 이사진의 업무 전문성 제고, 경영진 보수지급과 관련한 객관적 기준 도입 및 공시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밸류업 정착을 위한 제도개선방안으로 △내부거래 공시 강화– 투명한 내부거래 공시를 통한 시장 감시 기능 확대 △거버넌스 개선과 행동주의펀드의 활용 △스튜어드십코드 실효성 제고 △사외 이사진의 업무 전문성 제고 이사회의 전문성 강화 △경영진 보수 관련 객관적 기준 도입 △자사주 처분 관련한 공시 강화 등 제도적 개선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 7가지를 제안했다.
◆행동주의 펀드, 이사회 변화 유도해야 =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이사회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이사회가 직접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경영위원회, 보상위원회 같은 이사회내 위원회에서 산업특성, 기업여건 등을 고려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실장은 또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주주에게 설명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정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행동주의펀드 역할에 대한 중요성도 제기됐다.
이수철 NH투자증권 운용사업부 총괄대표는 “이사회 변화를 유도하고 의무를 강화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며 “규제 강화보다는 행동주의펀드나 주주권 행사를 활성화하는 것이 자본시장 발전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현재 국내 주식시장의 자본이 해외로 계속 유출되고 있어 한국 기업과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우려되어 시간이 별로 없다”며 “상법 개정, 행동주의 펀드와 연기금의 감시 기능 강화 등 추가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 면제’ 기업가치 약화 초래 = 한편 금융당국이 최근 기업 밸류업을 지원하기 위한 인센티브로 제시한 ‘감사 관련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면제방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업가치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광윤 한국감사인연합회장(아주대 경영대학 명예교수)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면제해주겠다는 발상은 회계투명성 향상의 중요한 버팀목인 주기적 지정제를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기업 밸류업 관련 본말전도가 우려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한국감사인연합회는 지난 12일 성명서를 내고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서라도 주기적 지정제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사인연합회는 “지배구조의 개선과 회계투명성 향상 중 어느 하나를 취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시킨다면 기업의 밸류업을 극대화할 수 없다”며 “이들 두 가지는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 “밸류업 추진 골든타임” … 5월 중 가이드라인 발표 = 한편 금융위원회는 5월 중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준비된 기업부터 적극적으로 공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기업 밸류업 통합 홈페이지 개설 등의 인프라 구축도 5월 중 완료할 계획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영상으로 전한 환영사에서 “국내외 많은 투자자들의 우리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기업 밸류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골든타임”이라며 “세제지원 방안도 준비 되는대로 조속히 발표하고, 3분기 중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완료 등 후속 과제들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의 규제가 아니라 건전한 시장의 압력을 통해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며 "밸류업을 통한 자본시장 활력 제고가 우리 경제 성장동력 회복을 위한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하반기에 관련 방안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뀌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