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제조 스마트화를 제대로 하려면

2024-04-25 13:00:01 게재

우리나라 중소 제조공장은 기술발전에 따라 3단계의 스마트화라는 고도화 과정을 거쳐 왔다. 첫째가 자동화(automation), 둘째가 지능화(intelligence), 셋째가 자율화(autonomy)다. 중소제조업 자동화는 1990년대 말 IMF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다. 2014년에 정부는 ‘스마트공장 구축지원사업’으로 4차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해 제조업의 지능화를 위한 지원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스마트공장 설비를 도입하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2017년에는 ‘스마트제조혁신 지원사업’으로 변경하고 지원범위를 확대했는데 스마트공장 구축지원사업, 디지털협력지구(클러스터) 구축지원, 제조데이터 활용 지원, 스마트제조 인력 양성, 스마트제조 컨설팅 등의 다양한 사업으로 전개되었다.

스마트화의 핵심은 장비나 공장이 아닌 데이터

스마트화 핵심은 장비도 아니고 공장도 아닌 데이터다. 데이터는 특정 사안에 대하여 구조화된 정보로 처리 결합 분석이 가능해야 하며 분석을 통하여 의미를 추출할 때 유용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데이터는 정형(표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유용성을 가진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다면 스마트화를 달성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의 85%는 매출 1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이며 이중 소공인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한편 정부주도의 제조업 스마트화는 MES(생산관리시스템)같은 제조 솔루션을 IT 업체가 컨설팅을 통하여 중소제조기업에 이식시키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10인 미만의 인력을 보유한 소공인 업체에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공정이 바뀌거나 새 장비가 들어오면 데이터 생성이 안돼 도입한 솔루션이 먹통이 되기가 십상이다. 정부가 예산을 집행하는 초창기에 잠시 반짝 스마트화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얼마 못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기계장비에서 나오는 정보의 일관성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는 제조사가 상이하더라도 생성하는 정보의 주소는 동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실은 기계 제조회사에 따라 정보가 생성되는 주소가 다르기 때문에 기계를 교체하거나 담당자가 변하게 되면 일관된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

둘째, 데이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다 단순한 형태의 정보 정형화가 도입되어야 한다. 현재의 스마트화 지원사업은 소공인에게 적용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 표준(AAS)을 적용한다. 대부분의 소공인이 사용하는 장비에 AAS같은 데이터 표준의 적용은 어린이에게 어른의 옷을 입히는 것과 같아서 데이터의 유용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셋째, 스마트제조 지원사업에 기계장비 제조업체를 주요 플레이어로 참여시켜야 한다. 이제까지는 정부, IT솔루션 업체, 도입기업의 3자 체제였는데 여기에 기계장비 업체를 포함시켜 4자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범용 기계장비 부문에서 직접 정형화된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게 기계장비가 제작되어 판매된다면 소공인 공방에 비록 전문가가 없더라도 일관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며 스마트화가 훨씬 용이하게 진행될 것이다.

중소제조업 체급에 맞는 맞춤형 스마트화 개발돼야

효과적인 소공인형 스마트화는 중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보여주는 MES 또는 ERP(전사적자원관리)가 작동되는 스마트팩토리가 아니라 공방에 설치된 기계장비 자체의 스마트화여야 한다는 것이고 데이터의 유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현재 스마트팩토리에 적용되는 표준이 아닌 이를 단순화한 소공인형 데이터 정형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초점을 넓히거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체급에 맞는 맞춤형 스마트화를 하자는 것이다.

김문겸 숭실대 명예교수 전 중소기업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