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사이트에 빠져드는 10대
사이버도박 즐긴 청소년 1천명 검거
고교생 제작, 중학생 운영 사이트도 적발 … 게임화·지능화 경향 뚜렸
청소년 실명계좌 1천개 악용 … 학교내 도박범죄 예방 교육 강화 절실
#. 고교생이 만들고 중학생이 관리하는 판돈 2억원대 도박서버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용자 대부분도 10대 청소년이었다.
부산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 18일 도박장 개설, 도박,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성인 총책 20대 A씨를 구속하고, 총책 B군과 서버 관리자 C군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B·C군 등은 서버 제작 기능이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박 서버를 만든 뒤 또래 집단에 초대 링크 등을 보내 돈을 받고 도박 게임에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2억1300만원을 송금받은 뒤 2000여만원을 챙겼다.
범행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친해진 중학생 총책 B군과 고등학생 서버 관리자 C군의 공모로 시작됐다. C군이 서버 개발·유지 관리를, B군은 전반적인 운영을 맡았다. 둘은 도박 서버 내 직원 모집 글을 통해 게임머니를 충전·환전하는 직원도 중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뽑았다.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돈을 송금받는 은행 계좌 역시 중·고교생 5명에게 하나당 10만~20만원에 사들였다.
구속된 성인 총책 A씨는 애초 도박 이용자였다가 직원 모집 공지글을 보고 지원해 운영자가 됐다. 특히 B군은 자신이 경찰 수사를 받자 A씨에게 수사 내용을 공유하며 단독으로 도박 서버를 운영하도록 돕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들이 운용한 사이트를 이용하다 입건된 도박 이용자 대부분은 10대 청소년이었고 초등학생 1명, 여중생 2명도 포함됐다. 한 사람이 베팅한 최다 금액은 218만원이었고 한 고등학생은 4개월간 325차례 입금하기도 했다.
초·중·고생을 포함한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사이버 도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가 사실로 확인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작년 9월 25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6개월간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벌여 청소년 1035명을 포함한 2925명을 검거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은 이 가운데 성인 75명을 구속했고 범죄수익 총 619억원을 환수했다. 검거된 청소년 1035명 중 566명은 당사자·보호자 동의하에 전문 상담기관에 연계했다.
청소년 검거 인원의 대다수는 ‘도박 행위자’(1012명)로 전체의 97.8%를 차지했다. 그 외에는 ‘도박사이트 운영’ 12명, ‘도박사이트 광고’ 6명, ‘대포물건 제공’ 5명이었다.
연령별로 구분하면 고등학생이 798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 228명, 대학생 7명이었다. 초등학생도 2명 포함됐는데, 최저 연령은 1만원을 걸고 도박한 9세였다.
◆“도박을 게임이라고 잘못 인식” = 연령대별 도박사이트 유입 경로를 보면 중고등학생은 ‘친구 소개’가 가장 많았다. 초등학생을 포함해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을 유인하는 주요 수단은 ‘스마트폰 문자메시지’였으며 온라인 사이트 광고, SNS 광고 등에 현혹된 사례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는 ‘학교내 도박범죄 예방 교육의 중요성’을 시사한다”면서 “최근 도박을 비롯한 스미싱 및 투자·취업·연애 등을 빙자한 사기범죄 의심 문자메시지가 자주 발견되므로, 불법 정보가 포함된 문자메시지 최소화 방안을 관련 부처·기관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 도박 유형은 바카라(434명·41.9%)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스포츠도박(205명·19.8%), 카지노(177명·17.1%), 파워볼·슬롯머신(152명·14.7%), 캐주얼게임(67명·6.5%)이 뒤를 이었다.
청소년 사이버도박이 확산하는 이유는 실명 계좌나 문화상품권만 있으면 간단한 회원 가입 후 도박 자금을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수본 관계자는 “도박자금 관리 등에 사용된 청소년 명의 금융계좌 1000여개가 발견됐다”며 “학부모는 (자녀의 도박을) 목격한 적 없다고 해서 내 자녀가 도박하지 않는다고 막연히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도박을 게임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청소년도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청소년 사이버도박은 게임화·지능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대전청 사이버수사대는 규칙이 단순한 홀짝·사다리·패널티킥 등을 만들어 최단 시간 승패를 확정하고 환전해온 도박사이트 운영자 8명(구속 6명)을 검거하고 청소년 도박 행위자 33명을 찾아냈다.
인천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필리핀 등 해외를 기반으로 26개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카지노게임을 제공한 사이트 운영자 등 163명 검거(구속 3명)하고 범죄수익 9억3800만원을 기소 전 추징보전했다. 불법 도박사이트를 이용한 청소년은 112명이었다.
◆경찰 5월부터 2차 단속 = 국수본은 5월부터 6개월간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단속은 △도박프로그램 개발 △서버 관리 △도박 광고 △대포물건 제공 △고액·상습 도박 행위자 등 도박사이트 자체와 연결된 범죄수익 카르텔 와해가 목표다.
아울러 명예 사이버 경찰 ‘누리캅스’를 통해 온라인상 불법 유해정보를 근절하고 사이버범죄 예방 강사를 활용해 ‘찾아가는 도박범죄 예방 교육’을 확대할 방침이다.
우종수 국수본부장은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을 고려해 고액·상습 도박 행위자를 상대로 엄정한 법 집행을 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치유·재활과 교육·홍보에도 힘쓰겠다”면서 “가정·학교·인터넷사업자·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간 구축해온 인터폴·유로폴 및 해외 수사기관·정보통신기업들과의 긴밀한 국제공조를 통해 해외 소재 도박사범을 끝까지 추적·검거하고 있다”면서 “촘촘한 자금흐름 추적을 통해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하고, 역할분담 등 조직성을 규명해 범죄단체조직·활동죄를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