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노동정책
“인구대응, 노동공급 확대보다 부문·유형간 불균형 완화 우선”
노동3학회 정책토론회 “임금체불, 행정제재 강화해야” … “노동시장 이중구조, 원하청 공동 노사협의회부터”
“우리 노동시장은 유례없는 초저출산과 초고령화, 곧 마주하게 될 경제활동인구 감소, 산업구조 전환 등 모든 분야가 변화와 혁신의 격랑에 마주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대한 진단이다.
이같은 변화와 혁신의 요구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입법정책 환경에서 전환기에 맞는 노동정책에 대한 숙의가 절실하다. 한국노동법학회·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한국노동경제학회 등 노동3대 학회가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전환기 노동정책의 과제’를 주제로 공동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상희 한국노동법학회 수석부회장은 개회사에서 “복잡한 임금체계 관행에 따른 임금분쟁은 물론 체불임금 사정까지 포함하는 임금보호법제 관련 과제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도 시기를 거듭할수록 더욱 심화를 겪고 있어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상생방안을 본격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초저출생 초고령화 사회로 급변하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한 노동시장 정책 방안도 더 늦기 전에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3대학회 정책토론회에서 ‘장래 인구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발제를 통해 “초저출산·초고령화에 따른 인구변화 대응책으로 가까운 장래(향후 15~20년)에는 총량적인 노동공급을 늘리는 것보다 부문(산업·직업) 및 유형(학력) 간 불균형 완화를 위한 정책에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4~5년 뒤에는 청년인구가 줄면서 노동시장 신규 취업자도 빠른 감소가 예상되는 만큼 동일 부문 내 연령별 취업자간 불균형 확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20년 뒤부터는 경제활동인구 규모가 가파르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더 넓은 부문과 더 다양한 유형의 노동인력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노동수요 감소가 크지 않다면 총량적인 노동공급 확대가 필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전반적인 노동수요가 커지지 않는다면 2040년쯤까지 총량적인 노동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시간당 임금을 생산성 지표로 본다면 경제활동인구의 고학력화가 고령화 영향을 압도해 생산성을 고려한 노동인력 규모가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느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가까운 장래, 노동부족보다 부문·유형간 불규형 더 심각 = 가까운 장래에는 총량적인 노동부족보다 부문(산업·직종)간 노동유형(학력) 간 불규형 문제가 더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 총량에서 노동공급과 노동수요가 일치해도 특정 부문·유형별로 노동인력 과잉과 부족이 함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21~2031년 인구변화로 노동공급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직업은 ‘교육 전문가 및 관련직’이지만 이 직업은 동시에 ‘고학력 20~34세’ 노동공급이 다섯번째 많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인구변화 및 산업·기술 변화로 인한 산업·직업별 노동부족 규모를 보면 사회복지서비스업 노동부족 인력 36만6434명 중에서도 비전문직군이 12만5664명, 숙련직군은 8690명이 860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교수는 “인구변화는 산업·기술 변화와 함께 산업·직종간 노동수급 불균형을 악화시키고 산업·직종간 내에서도 학력(숙련수준)·연령간 노동수급 불균형이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라면서 “이동성과 학습능력이 높은 청년인력의 감소는 노동시장의 기능을 악화시켜 산업경쟁력의 약화와 잠재성장률 저하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구변화에 따른 노동수급 불균형 대응방안으로 인적 자본과 일자리 간 미스매치를 완화하기 위한 교육과 노동시장 개혁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노동시장 수요변화를 반영해 인적자본을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필요하고, 부문·유형간 이동성을 높이는 노동시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력 정책에 대해서 이 교수는 “청년인력이 감소하는 부문을 고려할 때 현재보다 더 다양하고 숙련도가 높은 외국인력이 필요하다”면서 “우수한 외국인력을 유치와 우수 인력에는 장기체류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필요한 노동인력을 탄력적으로 공급하는 것과 내국인을 보호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고령자의 고용률이 높아지지 않더라도 숙련도와 생산성이 높은 고령 취업자 비중이 늘어난다면 실질적으로 노동투입을 늘리는 효과가 있으므로 고령인구의 질적 변화를 고려한 고령노동 정책을 주문했다.
정년 연장에 대해서 이 교수는 “정년 연장의 고령자 증가 효과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서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고령자 고용에 성공한다고 해도 가파르게 줄어드는 청년 취업자를 잘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고령인력의 생산성과 이동성 제고를 전제로 고령자 고용확대가 잠재적인 노동부족 대응을 위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이 교수는 여성 경제활동 확대, 고령친화적 작업환경 조성을 제안했다. 특히 고령친화적 작업환경 조성은 여성 청년 등 전세대를 아우르는 노동시장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토론에서 “활력제고를 위해 젊은 층이 필요한 중소기업의 경우 일하는 방식 변화는 사활적인 중요한 과제”라며 “정부는 이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8개 주, 미지급 임금에 3배 부가배상금 =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임금보험법제의 현황 진단과 대안 모색’ 발제에서 근로기준법 준수율 제고를 위해 형사벌 수준 강화가 유일한 해법은 아닐 것”이라며 “형사벌 이외 다양한 행정적 제재수단을 확대해 검찰 기소와 법원 판결을 거치지 않고도 고용부가 적시에 행정 이행강제 수단을 활용해 근기법 위반을 교정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미국 일부 주들이 도입·운영 중인 임금체불에 대한 △부가배상금 제도(미지급액의 2~4배) △과태료·과징금 제도 △임금 담보권 설정 △보증금 예치 등을 행정적 제재를 제시했다. 애리조나 메릴랜드 미시간 등 미국 8개 주는 최저임금·미지급 임금 청구에 대해 3배의 부가배상금을, 컬럼비아 특별구는 미지급 임금 청구에 대해 4배의 부가배상금 조항을 두고 있다. 보증금 예치는 정부 인가를 받아야 하는 고위험산업 사용자와 임금절도범 사용자에 대한 벌칙으로 요구될 수 있다.
권 교수는 “사용자의 법 위반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일부 처벌 규정을 비범죄화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에서 매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민사법 상한을 조정하는 것처럼 과태료가 실질적인 위하력을 가질 수 있도록 과태료 금액을 적시에 조정하는 제도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기법 위반행위에서 반복 임금체불 등 반사회적인 유형은 사용자의 부당한 이익을 환수한다는 취지에서 형사벌에 추가해 과징금 제도 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연공급 중심에서 직무·성과금 중심을 임금체계 개편 추진에 대해 권 교수는 “특정한 임금체계와 공정을 연결하는 관점은 다소 의아하다”며 “노동소득 분배율 제고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공정’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직무급이 공정성 제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하지만 전체 노동시장이 아니라 단일 기업 차원에서 이 기업의 임금체계는 연공급이든, 직무급이든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사관리의 ‘효율성’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는 임금체계와 관련한 기업과 근로자 사이의 정보 불균형 해소”라며 “근로자는 어떠한 기준으로 자신의 임금수준의 결정되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업 상생협약, 임금인상 성과에도 기성금 기준 등 미완성 =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 교수는 ‘조선업 이중구조와 상생협의체 실험’을 발표했다.<2024년 3월 29일 “조선업 발전, 산업·노동이 균형 맞춰 나갈 때 가능”(https://www.naeil.com/news/read/505913) 기사 참조>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계기로 조선업 이중구조 문제가 부각됐다. 이에 정부는 그 해 10월 ‘조선업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11월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체’(상생협의체)를 발족했다. 상생협의체는 4개월 논의 끝에 지난해 2월 27일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정 교수는 지난 1년간의 이행과정에 참여했다.
정 교수는 “상생협의체 1년을 결산하면 임금인상, 복리후생 확대, 에스크로 결제제도(노무비 직접지급 제도) 도입, 외국인 인력 확대를 통해 조선업 생산 정상화를 도왔다”면서도 “기성금에 대한 투명한 운영, 다단계 하도급인 물량팀 최소화, 숙련인력 차등 보상 등은 미완성 과제로 남았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상생협의체 초기 논의과정에서 노조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으나 원·하청 사용자측이 부담스러워하면서 노조가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 “낮은 수준의 원하청 공동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면서 공동교섭 등으로 제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ㅈ제안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 2월 6일 경사노위 본회의에서 노·사·정이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원칙과 방향’에 합의했다”며 “조만간 합의문에 따라 1개의 특별위원회와 2개의 의제별위원회가 구성되면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사정은 미래세대와 지속가능한 일자리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사회적 대화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