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차등적용
선진국 최저임금 차등적용해도 대부분 ‘상향’ 책정
민주노동연구원 ‘2025년 최저임금 논의의 주요쟁점’ 발간 … 자영업자 ‘경영악화’ 원인, 인건비 아닌 ‘임대료’
3월 29일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최저임금위)에 2025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지만 최저임금위 첫 심의가 5월 중순 이후에나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4월로 예정됐으나 문재인정부때 임명된 노·사·공익위원 대부분 임기가 13일로 끝나면서 연기됐다.
올해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될 전망이다. 지난 2월 서울시의회 윤기섭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 38명이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발의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3월엔 한국은행이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최저임금 미만으로 고용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최저임금제는 노동자의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입법적 행위를 통해 최소한의 임금을 강제하는 제도로 최저임금법 제3조에 따라 단일한 국가최저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최저임금법 제4조1은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하도록 하면서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위원측은 이를 근거로 매년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업종의 차등적용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실제 적용된 사례는 최저임금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 한번 뿐이다. 수년간 최저임금위에서 사용자위원들의 요구로 업종·지역별 차등적용안을 논의했지만 공익위원들의 반대로 매년 부결됐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를 수 있다. 공익위원들을 윤석열정부가 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이 지난달 29일 워킹페이퍼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리의 허구성-2025년 최저임금 논의의 주요쟁점’을 발간하고 조모조목 비판했다.
민주노동연구원은 사용자위원측의 최저임금 차등적용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사용자위원들은 업종·지역별 차등적용 근거로 사용자의 임금지불 능력이나 지역별 경제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최저임금이 경제를 악화시킨다고 주장해왔다. 또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차등적용을 도입하고 있으니 한국에서도 제도개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국제노동기구(ILO) 임금보고서에 따르면 187개 ILO 회원국의 90% 국가에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53%), 특히 선진국에서는 주로 단일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저임금위가 발간한 ‘주요국가의 최저임금제도’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비회원국 15개 등 41개 국가 중 국가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19개 국가다. 국가최저임금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업종·지역별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11개 국가, 국가최저임금제 없이 업종·지역별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9개 국가였다. 나머지 2개국 그리스는 직원과 장인으로 구분해서, 영국은 연령별 차등적용을 시행하고 있다.
조현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최저임금제를 기본으로 업종·지역별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11개국을 살펴보면 대부분 국가최저임금보다 업종·지역별 최저임금을 더 높게 책정해 최저임금 하향을 목적으로 한 사용자위원들의 주장과 완전히 정반대였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차등적용하지만 연방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하도록 하는 식이다.
●일본도 45년 만에 ‘통일적 최저임금’ 추세= 조 연구위원은 “정부의 ‘차등적용 모델이라는 일본마저도 지역별 차등적용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45년 만에 최저임금 등급체계를 4개에서 3개로 축소하는 등 ‘통일적 최저임금’으로 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또 높은 최저임금이 자영업자의 ‘경영악화’의 원인이라는 사용자위원측의 주장도 반박했다. 지난해 심의과정에서 사용자위원측이 차등적용을 요구한 숙박·음식점업 편의점업 택시운송업 등 3개 업종의 경우 최저임금위 보고서조차 전체 영업비용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임차료를 포함한 기타 영업비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업에서 인건비가 차지한 비중은 5.8%에 불과했지만 임차료 및 기타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94.1%나 됐다. 음식·숙박업 역시 인건비가 차지한 비중은 22.4%였으나 임차료 및 기타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7.3%였다. 택시·운송업의 경우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41.0%, 임차료 및 기타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59.0%였다. 그러나 택시기사의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영업비용 1040만원 가운데 LPG 등 연료비가 580만원으로 절반이 넘었고 자동차 할부금가 220만원, 자동차 보험료가 130만원을 차지했다.
조 연구위원은 “실제로는 인건비보다 원자재·연료비 등의 가격상승, 제품·서비스 수요감소가 경영악화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차등적용 ‘지방소멸’ 더 부추기는 요인 = 설사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하더라도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차등적용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제도적 능력, 임금통계의 질, 행정집행 능력, 최저임금제도를 보완하는 조세 및 보조금 정책 등이 있다”며 “하지만 현재 우리의 조건은 업종이나 지역을 구분할 합리적 기준, 이를 판단할 객관적 통계조차 제대로 마련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 또는 협의, 결정절차 등 제도운용을 위한 논의도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지역별로 임금이 차등화된다면 결국 최저임금이 낮은 지역에서는 고학력 노동력은 물론이고, 저학력(저임금) 노동력(특히 비혼단신 청년층)까지 유출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영세사업장까지 인력난을 겪게 된다는 의미”라면서 “이처럼 지역별 차등적용은 단순히 임금제도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인구소멸’ ‘지방소멸’과 같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부추기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