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속도내지만 '채상병 수사' 한계

2024-05-03 13:00:02 게재

‘채 상병 특검’ 국회 통과로 주목받는 공수처

수사인력 부족, 고발 5개월만에 강제수사 착수

기소권 없어 검찰에 넘겨야 … “특검이 효과적”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관심이 모아진다. 여권은 공수처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수사 결과를 보고 특검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수처의 지휘부 공백이 길어지고 수사인력이 부족한데다 기소권도 없어 특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조사한 데 이어 조만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이 의혹은 지난해 집중호우 당시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혐의로 군 검찰에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폭로로 불거졌다. 박 전 단장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려고 하자 군 수뇌부가 전화를 걸어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하는 등 외압을 행사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박 전 단장은 지난해 8월 해병대 수뇌부와 국방부 관계자를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수처 수사가 본격화된 것은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올해 1월 국방부 등을 압수수색하면서다. 휴대전화 포렌식 등 압수물 분석이 늦어지면서 핵심 피의자에 대한 조사는 지난달 말에서야 시작됐다.

공수처는 지난달 26일과 29일 유 법무관리관을 불러 조사했다. 유 법무관리관은 지난해 7~8월 박 전 단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수사 내용을 축소할 것을 요구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국방부 감찰단이 경찰로 넘어간 수사기록을 회수하는데 관여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 과정에서 유 법무관리관이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공수처는 또 2일 박 전 직무대리를 소환조사했다. 그는 경찰로부터 회수해온 수사기록을 재검토해 당초 8명이었던 혐의자를 2명으로 줄여 최종 결과를 내놓은 조사본부의 당시 책임자다.

김 사령관에 대한 공수처 조사는 이르면 이번 주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공수처는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이 전 장관 등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처럼 공수처가 뒤늦게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정부와 여당에서는 수사 결과를 보고 특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2일 대구고등·지방검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공수처 역시 검찰이나 수사기관에 수사 미진 사례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마련된 수사기관”이라며 “수사 결과도 지켜보지 않고 바로 특검을 추진한다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수처 내부사정을 보면 수사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당장 지난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임기만료로 퇴임한 이후 공수처는 석 달 넘게 ‘대행의 대행’이라는 기형적인 체제로 운영돼왔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뒤늦게 후보자를 추천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최종 후보자 지명을 미뤄온 탓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에서야 오동운 변호사를 공수처장 후보로 지명했다.

오 후보자가 오는 17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바로 임명되더라도 차장 제청 등 지휘부 구성이 완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통령실 개입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에 지휘부 없이 사건처리방향 등 수사와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수사인력 부족도 수사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하는 공수처 수사4부 검사는 6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채 상병 사건 뿐 아니라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도 함께 수사하고 있다. 채상병 특검에서 20명 이내 검사의 파견근무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공수처에 이 전 장관 등 채 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권이 없는 것도 특검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 출범 당시 권한이 커질 것을 우려해 기소권을 제한한 데 따른 것이다.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 수사를 마무리해 수사기록을 검찰에 넘기면 검찰이 검토해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문제는 대통령실과 여당이 수사외압의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적극적으로 기소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군 수뇌부 뿐 아니라 대통령실 연루 의혹까지 제기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엄정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독립적인 특검을 통해 실체를 밝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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