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수도권 낙선자에게 듣다
“이종섭 사태 후 사람들 눈길 싸늘, ‘대파’ 이후엔 걷잡을 수 없이 넘어가”
‘아랫목’ 분들 아직 따뜻하겠지만 면적 좁아질 것
국민의힘, 빙하 녹아 설 곳 없는 북극곰같은 상황
조용한 당? 위기 속 나서봐야 대접 못 받아 인식
4.10총선 참패로부터 4주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국민의힘 낙선자들이 느끼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침묵뿐이라고 했다. 외부에선 세 번 연속 총선에서 패한 데다 집권여당 사상 기록적인 대패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성찰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요란한데 정작 당 분위기는 고요하다. ‘4년 전보다 의석은 늘었고 득표율 격차는 5.4%p로 줄었다’는 희망회로 돌아가는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질 정도다.
국민의힘에게 서울보다 더 험지라는 것이 이번 총선에선 확인된 경기도·인천에서 출마한 세 명의 낙선자를 3일 내일신문 본사에서 만났다. 좌담에 참여한 박상수 인천 서갑 조직위원장, 서정현 경기 안산을 조직위원장, 한정민 경기 화성을 조직위원장은 험지 출마 3040 국민의힘 후보들이 뭉친 ‘첫목회’ 회원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보수정당에서 실종됐던 소장파의 목소리를 부활시키고자 노력 중인 그들에게 총선에서 느낀 민심, 그리고 국민의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각자 총선 과정을 복기해 보자.
서정현(서) = 몇 안 되는 광역의회 출신으로 안산을 지역에 출마했다. 안산 지역구가 4개였다가 3개로 줄어들면서 공천이 매우 늦어졌다. 총선까지 한달 정도 남은 상황에서 3자 경선 치르고, 결선까지 가서 공천이 확정됐다. 본선도 국민의힘 전 국회의원 출신이 무소속으로 나오면서 3자 구도로 치렀다.
박상수(박) = 학교폭력 관련 변호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지난해 서이초 사건 등으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교육인재로 영입됐고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1호 영입인사로 소개됐다. 인천에서 초중고를 나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천 지역에 출마하게 됐다.
한정민(한) = 전국적으로 가장 시끄러웠던 지역구 경기 화성을에 출마해 민주당 공영운 후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 겨뤘다. 총선에 나선 많은 후보들 가운데 가장 일반인에 수렴하는 사람이 저 아닐까 싶다.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반도체 데이터분석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시민사회와 연이 많이 생겼고 그러다 정치권과 연이 생긴 것 같다.
●모두 낙선했는데 언제 질 것 같다고 생각했나.
한 = 동탄이 험지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동탄에 오래 살았으니 지역에 뭐가 필요한지를 잘 알았고, 공약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3월 이종섭 사태 후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준석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했던 상황인데 공영운 후보가 한 라디오 토론에 나와 굉장히 못하는 걸 보면서 쉽지 않겠다 느꼈다. 공 후보 지지가 빠지면 이 후보에게 갈 수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 당의 선거메시지가 ‘이(재명)·조(국) 심판’으로 굳어졌고, 지역에선 어떤 공약도 먹히지 않게 됐다. 절망감을 느꼈다.
박 = 2월에는 민주당이 제 상대 후보를 정하기 위해 여러 번 여론조사를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김교흥 후보를 전략공천한 이후에도 괜찮았다. 길거리에서 환호를 받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잊혀지지 않는 것이 3월 4일인데 이종섭 전 호주대사 사건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급격하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면전에서 명함 찢어서 뿌리는 분이 계셨고, 공중화장실 소변기의 소변 떨어지는 곳에 내 명함이 있더라. 새벽에 더 일찍 나오고 인사 각도를 90도보다 더 굽히면서 선거일을 맞았다. 선거 내내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해 지역으로 돌아오시는 분들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분들에겐 공보물과 뉴스가 국민의힘과 후보의 이미지를 결정해 버린다. ‘이종섭’ 이미지가 나의 이미지가 됐을 거다.
서 = 처음에 공천장받아 뛰기 시작했을 때는 민주당이 공천 잡음으로 상당히 시끄러웠을 때라 분위기가 괜찮았다. 분기점은 제가 느끼기에 ‘대파’였다. 대파 사태 이후 그냥 훅 가버렸다. 명함을 뿌릴수록 더 당선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하루하루 체감했다. 이종섭·황상무 사태는 정치 관심층이 알 수 있는 이슈였다면 대파는 완전 놀이가 됐다. 나중에는 평범하게 장을 봐서 대파 사서 가는 아주머니들 보고도 움찔할 정도였다. ‘대파’는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들을 투표장에 가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그 전부터 사람들이 대파 때문에 겪은 일이 많이 있는, 연혁이 있는 재화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강력했다.
●어떤 대응을 했으면 좀 나았을까.
서 = 대파의 경우 정말 정치가 희화화되는 상황이었는데 차라리 우리도 같이 타고 올라가서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켜 놀았으면 어떨까 싶다.
박 = 우리 당은 그냥 엄근진(엄격·근엄·진지)하며 억울해요라고만 했다. 거기에 전국민 25만원 지원까지 치고 들어오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당은 조용하다.
박 = 믿을 수 없이 조용하다. 당선자총회의 셀카 분위기는 충격적이었다. 우리만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서 어느 의원에게 여쭤봤더니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라. 국민의힘은 이런 상황에서 희생한 사람들을 대접해준 적이 없고 그러니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 거라고. 저희는 솔직히 정치에 투신할 때 가졌던 에너지가 아직 많이 남아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만약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까지 떠난다면 우리 세대 중 국민의힘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구하기 힘들 거다.
한 = 국민의힘 이번 총선 결과를 삼성전자 반도체에 비유하면 이번 총선은 반도체의 수율(완성품 중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 위기상황이니 모든 임원이 모여서 대책회의를 할 상황이다. 임원 5명만 모여도 그 밑의 몇십 명은 회의 준비하느라 바쁠 테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복기하느라고 결국은 수백 수천 명이 모여서 밤새며 일할 테고, 그러다 보면 이게 문제였나 싶어 자기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했을 것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건데 정치업계는 ‘고백을 하면 안 되는 곳’이더라.
서 = 우리 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분들도 우리 당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것 같아다. 패배한 후에도 분석하고 반성하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무너졌다. 선거란 것이 전쟁 치르듯 전투력을 가장 높여서 치러야 하는 것인데, 일선 후보들은 유세차 지원도, 캠프 지원같은 것 하나 없이 정말 맨땅에서 치렀다. 선거도 이렇게 대응하는 당이 과연 패배 후 실패 요인을 되짚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와 역량이 있는 당인가 하는 의구심이 지지층에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 = 우리 당 지지층이 사라져가고 있다. 뭔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새로운 사람이 유입될 수 있는 창구 자체가 없다. 이른바 진보적인 성향의 시민사회를 보면 경력 있는 단체들이 신생 시민단체들과 함께 컨소시엄 구성해서 위탁사업 따고 어느 정도 시간 흐르면 독립시킨다. 이렇게 생태계가 구성돼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들이 진보적 시민단체, 정치 쪽으로 활동하게 된다. 보수 쪽으로는 그런 생태계 자체가 없어서 뭘 좀 하려고 하면 그냥 자기를 다 갈아넣어야만 하기 때문에 사람이 유입되지 않는다.
박 = 우리 당은 윗목과 아랫목이 뚜렷하다. 어쩌다 저는 윗목에 있게 됐는데 아랫목에 계신 분들은 따뜻하다고 느낄 테고 거기서 절대 물러나면 안 된다 생각하실 거다. 확실한 것은 아랫목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빙하가 녹는데 설 곳이 없는 북극곰같은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왜 윗목으로 갔느냐고 하는데 왜 불평 없이 갔냐고 물어보시는데 아마 우리 세대의 자유분방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겠다 하는 사람들이 이번에 우연찮게 많이 들어왔는데 이 분위기를 잘 엮으면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분위기 좋았던 2월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공천잡음으로 시끄러울 때 한동훈 전 위원장은 출마를 안 했고 희생을 했다. 정치개혁 이슈도 많이 제시했다. 이런 희생들이 이종섭 사건 등으로 빛이 바랐다. 그럼 뭔가 다른 것을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국회의 세종시 이전이라든지 또다시 정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저쪽에선 25만원 들고 나왔는데 우리에겐 어떤 무기도 없었다.
저희들이 공부하면서 비전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엄근진 말고. 이번에 당에 초대된 젊은 세대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준다면, 우리가 신나게 놀고 사람들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서 = 경계를 허무는 게 중요하다. 뭔가 재밌어 보이고 멋있어 보여서 사람들이 (국민의힘을) 구경이라고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정치는 이미 놀이가 됐다. 재미있는 걸 보여줘야 한다.
또 하나는 당내 민주화다. 아직 민주화되지 않은 최고의 조직이 정당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당 민주화를 좀 더 빠르게 치고 나가면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용산과 우리 당이 보여준 검사동일체같은 모습도 당내 민주화가 안 돼서 나오는 모습이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사진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