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실패국가 미얀마가 던지는 질문

2024-05-10 13:00:01 게재

미얀마에서 군사쿠데타가 발생해 정부 없이 국가가 표류하기 시작한지 3년이 경과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물론 미얀마 군부도 국제적으로 인정된 합법정부를 세우려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불과 10년 전 세계 최고의 투자처로 주목받았던 미얀마는 이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잊혀져가고 있다. 미얀마 국민의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미얀마 내부정세는 점차 무정부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1962년 네윈 장군의 쿠데타 이후 지난 60여년 간 군부가 미얀마의 질서와 통합을 보장해 온 유일한 세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이후 5년간 아웅산 수치 여사의 민주연맹이 집권하던 시기에도 사회의 안정을 담보하는 세력은 군부였다. 그토록 공고했던 군부의 지배권이 최근 ‘시민 방위군(PDF)’과 15여개 반군들의 공격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년 말 미얀마 동북부 중국 접경지역에서 중국 범죄조직을 소탕해달라는 중국정부의 요구를 군부가 잘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자 중국은 접경지역을 장악한 반군들을 동원해 중국 범죄자들을 소탕한 후 중국으로 압송했다. 이후 중국의 지원에 힘입은 반군들이 기세를 얻으면서 동북부 지역 이외 다른 국경지대에 있던 반군들도 군부에 대한 공격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면초가 상황이 발생하자 그간 강고했던 미얀마 군부가 동요하면서 지휘관과 병사들이 투항·탈주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접경지역의 주요도시들이 함락되고 반군들 지배지역이 넓어졌다. 게다가 시민군들은 주요 도시들에서 군과 정부 요인들에 대한 산발적 테러공격도 감행해 정국은 더욱 혼미해졌다.

미얀마 실패에 중국 러시아만 어부지리

현재 군부는 국토의 2/3정도인 내륙지방을 뺀 나머지 국경지역은 반군에게 내준 상태이고 이런 상황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미얀마는 정부도 없이 국토가 군부와 반군 지배지역으로 양분된 무정부 상태다. 군부와 반군 간 전투뿐 아니라 각자 이해관계가 다른 반군 간에도 분쟁 가능성이 있다.

미얀마는 사실상 ‘실패국가(failed state)’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즉 통치주체가 없어지고 각 지역별로 국토가 파편화되면서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혼란을 평정하고 국가를 통합하는 정통 정부를 세울 대안세력도 당분간 쉽게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민생도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고 인도주의적 재난마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미얀마가 실패국가가 되면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게 될까? 당연히 중국과 러시아가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다. 미얀마 군부뿐만 아니라 반군도 전투를 위한 무기공급을 이 두 나라에 의존한다. 결국 이 두 나라가 앞으로 미얀마 정세를 좌우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미얀마와 접경하고 있으며 작년 말 범죄조직 소탕 때 미얀마 내정에 개입한 전력을 갖고 있다. 미얀마가 실패국가가 되면 중국은 난민유입 방지 등의 명목으로 미얀마 내정에 더 노골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세력권 확장을 막기 위해 진력을 다하는 미국 등 서방국들이 미얀마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이런 서방의 무관심은 동남아 요충지인 미얀마가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가도록 방치하는 셈이 된다. 지정 전략적 관점에서 러시아보다는 중국의 세력권 확장을 막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다. 서방은 가치외교의 관점에서 미얀마에 제재만 가하고 아무런 외교적 조치를 하지 않는 우를 범한다.

도덕과 가치 중시할 때 국익 훼손될 수도

중국이 자국의 접경지역인 미얀마의 불안정을 자국에 유리하도록 요리할 수 있게 내버려 두면 중국은 또 다른 접경지역에서도 같은 행보를 반복할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중국은 미얀마 전례에 따라 개입할 명분을 찾을 것이고 병력도 파견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남북한 관계를 고려할 때 북한에 어떤 급변, 불안정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병력을 전개할 방안은 없다. 반대로 중국은 손쉽게 북한 영내로 진입할 길이 열려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외교정책이란 자국이 선호하는 일반적인 대외원칙을 표명하는 것보다는 구체적 상황 속에서 자국에 유리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도덕과 가치를 더 중시할 때에 실질적인 국익이 훼손당한다는 점을 미국 등 서방도 깨달아야 한다. 실수는 미얀마 희생으로만 족하다. 다른 곳에서는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백순 전 미얀마 대사 법무법인 율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