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와 함께 ‘유병장수시대’가 되면서 고령 유병자들의 노후자산 확보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령의 유병자들은 노후 생활자금뿐만 아니라 의료시설 비용 둥을 포함한 ‘건강자금’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이를 보조할 수 있는 사적 연금보험 활용은 저조한 실정이다.

보험개발원 KIDI BRIEF 최신호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0%대의 낮은 수준이며 노후 자산 축적을 위한 국내 개인연금보험 시장은 매년 축소되고 있다.

실제로 생명보험사 연금보험의 전체 수입보험료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간 연평균 약 2.8%씩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는 늘어나는 고령 유병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 차원에서 유병자 연금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독일에서 유병자 연금보험이 판매되고 있으며 특히 영국에서 유병자 연금시장이 가장 활성화돼 있다.

유병자 연금보험은 건강손상 등으로 인해 평균 이하의 기대수명을 가진 피보험자에게 더 많은 연금액을 지급하는 상품을 말한다.

일반 연금보험이 연금액을 산출하는 데 있어 피보험자의 성별과 연령만 고려하고 건강상태는 고려하지 않는 것과 차이가 난다.

일반 연금상품은 다양한 연령층에서 가입하는 데 반해 유병자 연금보험은 은퇴기에 있는 고령층이 주로 가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병자 연금은 통상 ‘증대연금’(Enhanced Annuity)이라 불리며 피보험자의 기대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따라 세분화된다.

‘증대연금’은 가입자의 생활 습관(흡연 등), 건강 상태(암·당뇨·고혈압 등)뿐만 아니라 거주지, 혼인상태 등의 요소를 반영해 연금액을 차등화한다. 연금액 산정 요인에 따라 흡연자연금, 중대질병자연금 등으로도 나눌 수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 1995년 유병자 연금상품이 처음 도입된 이후 연금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 2020년에는 점유율이 30%를 넘어섰다.

영국에서 유병자 연금시장이 활성화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퇴직자산을 종신연금으로 구입하도록 유도한 정부 정책으로 평가된다. 영국 정부는 퇴직자산으로 종신연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정책(퇴직자산 일시금 인출 시 높은 세율 적용)을 2015년 4월 이전까지 유지했다.

퇴직자산을 의무적으로 연금화하도록 유도하는 정부 정책은 상대적으로 생존 기간이 짧은 유병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유병자의 불만이 표출되면서 일반연금과는 차별화된 상품이 출시되게 됐다.

유병자 연금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 아닌 종신연금 의무화 정책을 통해 유병자 연금시장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정체된 국내 연금보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보장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연금 상품 개발과 △자발적 노후자산 형성을 위한 정교한 세제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 고령화와 노후 빈곤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병자 연금보험 도입은 개인연금 시장 활성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보고서는 “소비자는 유병자 연금보험의 종신 보장 기능을 바탕으로 장수위험을 회피하고, 안정적인 노후·건강자금 확보를 위해 필요한 연금액 증액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서 “보험산업도 고령화·유병자 시대의 보장수요에 부응하는 상품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