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뜨거운 감자’ 개헌론…여야 ‘동상이몽’
6공화국 헌법 37년째 유지…“7공화국 헌법 만들자”
개헌 효과 놓고 여 ‘국면전환’, 야 ‘임기단축’에 관심
1987년 개헌을 통해 6공화국이 시작된 지 올해로 37년째다. 6공화국 헌법이 손을 댄 지 오래돼 급변하는 시대상을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역대 국회마다 개헌 논의를 이어왔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여소야대인 22대 국회를 앞두고 “개헌을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속출한다. 문제는 여야의 개헌에 대한 기대 효과가 180도 다르다는 것. 여권은 여소야대 국회를 돌파하기 위한 국면전환 효과에 무게를 두는 반면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단축에 더 관심을 두는 모습이다.
13일 정치권에서는 1987년 9차 개헌을 통해 만들어진 6공화국 헌법이 시대에 뒤쳐진 만큼 하루빨리 10차 개헌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4.10 총선이 여당 참패로 끝난 뒤 여야 모두에서 각자 필요성에 따라 개헌 논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민주당 국회의장 경선에 나선 추미애 당선인은 △대통령 본인 및 가족 등이 관련된 이해충돌 사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제한 △국회 예산 편성 권한 신설 등을 공약했다. 추 당선인은 “국회 예산 편성 권한은 헌법 사안이니까 개헌이 필요하다”며 “국민의 헌법 개정에 대한 의견 또는 입법에 대한 의견을 제대로 묻고 개헌까지 갈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후보 시절인 2021년 11월 “(5.18 정신은) 우리 헌법가치를 지킨 정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헌법 전문에, 헌법이 개정될 때 반드시 올라가야 된다고 늘 주장을 해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는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넣는 내용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신년회견에서 “이미 수명을 다한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 정치의 실현과 국정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각자의 접근법은 다르지만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유력 정치인 대부분이 개헌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소야대인 22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불러올 정치적 효과에 대한 각자의 입장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4.10 총선에서 압승한 야권에서는 탄핵을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2일 뉴시스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도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임기를 탄핵을 통해 중단시킬 수 있다는 뉘앙스로 해석됐다. 연장선상에서 개헌도 임기 단축용 카드로 거론된다. 앞서 이 대표는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고 제안한 바 있다. 4년 중임제 개헌은 윤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해 다음 대선을 지방선거와 함께 2026년에 치르는 걸 전제로 한다. 야권 입장에서는 개헌을 하면서 윤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시키는 사실상 탄핵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이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4년 중임제 개헌과 관련 “개혁과 진보를 위해 필요한 시점으로 인식한다”며 “(윤 대통령 임기 단축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다고 하면 합의대로 진행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말했다.
여소야대 국회에 직면한 여권은 국면전환 카드가 절실하다. 야권이 쏟아내는 특검에 거부권만으로 맞서는 ‘쳇바퀴 정국’으로는 국정 성과를 낼 수 없다. 여권 일각에서도 야권이 호응할 가능성이 높은 개헌 카드를 통해 22대 국회를 선순환 궤도에 올리자는 의견이 나온다. 여권 인사는 “윤 대통령이 식물정권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야권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다. 개헌이 유일한 의제”라고 말했다.
다만 여권에서도 개헌 논의가 임기단축 카드로 ‘변질’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신지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개헌 논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임기단축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 아니겠냐. 일단 4년 중임제 논의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중지를 모아 나가야 된다. 그 다음에 임기 1년 줄이고 하는 건 누가 먼저 그걸 꺼내게 되면, 개헌 논의 자체가 판이 깨져버린다”고 말했다.
보수야권에서는 현실론을 앞세워 윤 대통령에게 임기단축 개헌안을 검토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당선자는 지난 5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궁극의 자기희생이 아니면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본인 임기를 일부 단축하면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하면 정치력도 회복하고 역사에 유산을 남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야당도 연금·교육개혁 등에 있어 정부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임기단축 개헌을 수용하는 대신 야권의 국정 협조를 얻어내라는 주문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탄핵을 피할 수 있고, 7공화국의 문을 연 대통령이란 역사적 평가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