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잃은 ‘진보정당 추락’…정의당 지도부 구성 ‘난항’
후보등록 19~20일로 재공지, 29일 지도부 교체 예정
원외정당 눈앞, 무기력 … “문 닫나 얘기까지 나온다”
진보당 지지율 1% 수준 … 사회민주당 등 재건 움직임
갈 길 잃은 진보정당의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20년간 진보정당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아왔던 정의당의 당대표와 부대표(2명) 후보 등록에 나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는데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수장 자리를 꺼리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진보당이 정의당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회민주당 등 다른 정당에 들어가 있는 진보진영 출신 인사들이 새로운 모색을 할 가능성이 타진되는 이유다.
16일 정의당 핵심관계자는 “22대 총선이후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너무 시간이 짧아 당대표와 부대표 출마에 대한 입장정리가 어려웠다”면서 “총선 패배 이후 당을 추슬러야 한다는 점에서 경선보다는 단독 후보로 추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정의당은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당대표, 부대표 선거 후보 등록을 받았지만 등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의당은 ‘정의당 대표단 선거 일정’을 다시 전국위에 이날 올릴 예정이다. 전국위에서 논의할 안건에는 이달 19~20일까지 당대표와 부대표 후보 등록을 받고 26일과 27일에 투표를 진행한 다음 28일에 지도부 이취임식을 갖는 방안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후보군’은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녹색당과 연합정당을 결성해 지역구에서 17명, 비례대표로 14명의 후보를 출마시켰지만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고 정당 투표율에서도 2%대에 머물러 단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면서 위기의 현실화를 경험했다.
위의 핵심관계자는 “지도부를 꾸릴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해야 정의당 쇄신의 모습을 보여줄지 논의를 하고 있었다”며 “기존 지도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다시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너무 새로운 외부인사에게 맡기는 것도 당에 대해 잘 몰라서 논의과정이 어려웠던 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만이 아니라 20년 진보정치, 12년 정의당 기간을 새롭게 만드는 지도부가 필요한데 좀 더 토론하고 고민하는 데에 시간이 부족했다”고 했다.
최근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이미 정의당은 ‘기타 정당’에 들어갔다. 유의미한 정당 지지율이 나오지 않은 원외정당에 대한 냉엄한 현실이다. 스스로 진보정당의 계보를 잇겠다는 진보당은 지지율이 1%대에서 더 오르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의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뿔뿔이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비전포럼과 정의정책연구소는 지난 9일 국회에서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전망과 역할 및 과제’를 통해 정의당 등 진보진영에 대한 성찰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김봉신 메타보이스 대표는 “(정의당은) 2020년 이후 의정활동이 실패했다. 청년, 여성 중심 비례 배치도 실패했다”며 “당원이 빠져나가는 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모든 정당은 지지자들의 의견은 받아들인다. 놀랍게도 정의당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며 “정세는 역동적으로 변하는데 비탄력적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번 총선이 끝나고 정치학자들을 만났더니 이번 선거는 ‘양정 심판’이라고 하더라. 하나는 ‘정’부 심판, 하나는 ‘정’의당 심판”이라며 “그런데 정의당 분들은 이번 선거에 정의당 심판이라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정의당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자기 살을 깎는 실천’이나 ‘정치적 행동과 결정’이 있었어야 했는데 없었다”며 “(유권자의) 선호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응하고 조응했어야 할 시점에 (선호를) 형성하려 했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전날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의당이 역사적 유산도 있고 조직적인 기반도 있어 재건을 선언하고 열어놓고 같이 할 분들을 수용하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 길이 없는 것도 아닌데 현재는 그런 의지나 리더십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도 없고 행보도 없다”고 했다. “그냥 고민하면서 (당대표 후보도) 안 나오고 선거 일정도 늦춰지니 그러다 보면 당을 그냥 문 닫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노동 약자를 대표하는 정당이 없거나 약했고 그래서 그 공간에 자리를 잡으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며 “여의도 정치를 벗어나 사회정당, 사회시민 속에서 새롭게 진보가치를 여는 부분을 표방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민주당을 비롯해 민주당, 조국혁신당에 들어가 있는 좋은 정치인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해 노동 약자를 대표하는 세력을 규합,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