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인사·지휘권 없는데 자치경찰?

2024-05-21 13:00:26 게재

국가경찰이 자치경찰사무 수행 한계

일선 지구대·파출소 시·도에 넘겨야

“지금처럼 조직·인사·지휘권도 없는 상태에서 자치경찰제를 운영한다고 표방하는 것은 매우 위선적입니다.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을 완전히 분리하든지 아예 폐지하든지 양단간에 결정해야 합니다.”

지난달 22일 서울시의회에 출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치경찰제에 대해 내놓고 작심발언을 했다. 시행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늬만 자치경찰제’ ‘자치경찰 없는 자치경찰제’ 같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오세훈 시장뿐 아니라 17개 시·도지사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지난해 “자치경찰위원회가 과연 조금이라도 자치 기능을 하고 있느냐”며 “이럴 거라면 자치경찰제를 없앴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도 이미 여러 차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분리’를 요구해왔다. 윤석열정부가 120대 국정과제 에 ‘자기경찰권 강화’를 포함한 것도 지금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2기 자치경찰위원회 속속 출범 제2기 대구시 자치경찰위원회가 20일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자치경찰제 시행 3년을 맞아 이 밖에도 17개 시도가 속속 자치경찰위원회를 출범하거나 출범을 준비 중이다. 대구 연합뉴스

◆“지구대·파출소, 주민센터 같은 곳” = 자치경찰제는 2021년 7월 시행됐다. 경찰 업무를 국가경찰사무 수사사무 자치경찰사무로 분리한 뒤 각각 경찰청장 국가수사본부장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지휘·감독하도록 한 제도다. 이에 따라 자치경찰은 순찰과 방범, 가정·학교·성폭력 예방, 교통법규 지도단속 등 주민생활 안전을 담당하게 됐다.

그러나 업무와 지휘·감독 체계만 조정했을 뿐 조직·인력 구성은 그대로 두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모든 경찰관이 국가경찰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자치경찰사무와 국가경찰사무를 동시에 하도록 한 탓에 시·도지사의 지휘·감독 권한이 무력해진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일을 하는 사람이 국가경찰이라 시·도지사가 지휘·감독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자치경찰제가 성공하려면 실질적인 인사권과 지휘·감독권한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주민들과 최접점에 놓여있는 지구대·파출소를 국가경찰 소속으로 둔 것이 잘못이다. 자치경찰사무 일선기관을 국가경찰인 112종합상황실 소속으로 둔 탓에 시·도지사나 시·도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감독권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박동균 전 대구시자치경찰위원회 상임위원은 “자치경찰의 핵심은 예방치안, 공동체 치안인데 지구대·파출소가 국가경찰 소속이라 손발이 묶여있는 꼴”이라며 “이는 지방자치가 시행됐는데 읍면동 주민센터가 행안부 소속이라는 얘기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는 2022년 이태원참사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는 명백히 자치경찰사무로 분류돼 있다.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안전대책을 세워야 할 주체가 서울시장과 서울시자치경찰위원회라는 얘기다. 하지만 기형적인 제도 때문에 실제 서울시장과 자치경찰위원회에 책임을 묻지 못했다. 오 시장이 이태원참사와 관련 “자치경찰위원회가 파출소나 지구대를 관할하고 지휘·통솔할 권한이라도 있었다면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예방 조치를 하는 데 실효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치안현장 지휘권 갈등 불가피 = 지난해 10월 경찰청의 일방적 조직개편은 제도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경찰청은 이상동기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별도의 기동순찰대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 조직개편이 자치경찰사무와 직접 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치경찰위원회와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는 점이다. 당시 경찰청은 조직개편을 위해 자치사무 중심의 생활안전과를 국가사무 중심의 범죄예방대응과로 바꾸기까지 했다. 경찰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치경찰사무를 경찰청이 임의대로 국가사무로 전환했다는 것이 시·도 자치경찰위원장들의 판단이다.

전국시도자치경찰위원장협의회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공동 입장문을 통해 당시 조직개편이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시·도 자치경찰위원장들은 “주민의 안전을 위한 범죄예방활동은 물론 112신고 처리도 명백히 자치경찰업무로 분류되어 있다. 범죄예방은 자치경찰의 가장 주된 업무이자 존재이유”라며 “범죄예방대응부서와 기동순찰대 및 이들을 관리할 경찰관에 대한 임용권·인사권을 (시·도경찰위원회가)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기동순찰대 업무분장과 지휘권 마찰은 실제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북도자치경찰위원회는 지난 15일 ‘야간·심야시간대 순찰강화’를 골자로 한 업무지휘 2호를 심의·의결했다. 전북경찰청 기동순찰대를 활용해 야간·심야시간 순찰을 강화해 지역 치안을 안정시키겠다는 목적이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여성 등 치안약자에 대한 강력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지휘권 발동에 대해 전북경찰청이 이견을 보이면서 신속한 현장대응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우려했던 현장 혼선이 발생한 셈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자치경찰과 국가경찰 이원화라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지금의 자치경찰제가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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