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찰-자치경찰 이원화 과제
정부 시범사업 등 단계별 계획 내놔야
시·도 자율권 확대, 국가재정지원 필요
자치경찰제의 가장 큰 문제는 ‘자치경찰사무를 지방공무원 신분의 자치경찰관이 아닌 국가공무원 신분의 국가경찰관이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7월 전국에 도입돼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늬만 자치경찰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제주 강원 전북 세종 4개 지역에서 시범실시하기로 했던 ‘자치경찰 이원화’는 진척 없이 멈춰서 있다.
◆“시·도지사 권한-책임 일치 필요” = 자치경찰 이원화는 도입 이전부터 제기된 과제다. 시·도지사들은 약 1만8000여명 정도 되는 전국의 자치경찰사무 담당공무원을 시·도 소속의 자치경찰관(지방특정직공무원)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현재 시·도경찰청 내 자치경찰사무 담당부서의 시·도 이관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시·도에 가칭 자치경찰본부 또는 자치경찰실을 설치·운영함으로써 시·도지사의 지휘·감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시·도지사들의 주장이다.
지구대·파출소 소속 이관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지방정부가 치안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지역사회 안전을 책임지라는 애초의 자치경찰제 도입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시·도 요구다. 박동균 전 대구시자치경찰위원회 상임위원은 “지구대·파출소 이관은 법 개정 없이 시행령만으로도 가능하다”며 “제도 완성을 위해 정부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도는 자치경찰제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시·도지사 소속 합의제행정기관이지만 위원회의 독립적인 직무 수행권을 보장하고 있어 시·도지사의 지휘·감독이나 관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사권이다. 현재는 경감·경위 승진 권한만 시·도지사가 직접 행사하며, 그 외의 자치경찰사무 담당공무원에 대해서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권한은 제한적인 반면 자치경찰사무 담당공무원에 대한 재정지원 책임은 시·도지사에게 있다. 시·도지사들이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태웅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선임연구원은 “시·도지사에 대한 사무권 인사권 지휘·감독권 등 제반 권한을 부여해야 자치경찰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일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정적 독립 재원 마련해야 = 재정문제도 풀어야할 숙제다. 문재인정부가 제도도입 초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이원화를 곧바로 시행하지 못한 것도 재정 해법을 찾지 못한 탓이 크다.
현재 시·도자치경찰위원회 예산은 국고보조금과 자체예산으로 구성돼 있다. 행안부와 경찰청의 국고보조금 1430억원, 행안부 특별교부금 20억원 등 1450억원이 중앙정부의 재정지원금이다. 시·도 자체 예산은 486억원이다. 하지만 인건비·운영비(160억원)와 자치경찰사무 담당공무원 맞춤형 복지비(210억원)을 제외하면 자치경찰사무에 직접 소요되는 사업비 예산은 116억원에 불과하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사업예산에 대한 재원이 확보돼야 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자치경찰의 재정 논의는 우선 국가의 책임에 무게가 실린다. 경찰법 제34조는 ‘국가는 지자체가 이관 받은 사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치경찰 재정에 대한 국가의 지원 의무를 명확히 한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는 데는 중앙이나 지방 모두 이견이 없다. 이 때문에 현재 학계와 지자체 사이에서는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우선 2단계 재정분권 조치로 2조2000억원 규모의 지방재정이 추가로 확충되는 만큼 이 예산에서 자치경찰사무 수행에 필요한 사업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치경찰교부세 신설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담배 개별소비세를 재원으로 하는 소방안전교부세와 같이 주세를 재원으로 자치경찰교부세를 신설하자는 주장이다. 현재 주세(약 3조8000억원)를 지방세로 이관하자는 논의가 있는 만큼 그 중 일부를 자치경찰 운영 재원으로 하자는 것이다. 자치경찰사무 분야인 교통 관련 범칙금·과태료 등을 자치경찰교부세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정치적 중립 훼손 우려’ 넘어야 할 산 = 자치경찰의 ‘정치적 중립’ 훼손 우려는 넘어야 할 산이다. 자치경찰을 이원화해 시·도에 이양할 경우 시·도지사들에게 과도한 권한이 주어진다는 우려가 있다. 결국 시·도지사 또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권과 인사권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인지, 또 견제·감시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관건인 셈이다.
시·도지사들은 중앙과 지방이 함께 참여하는 ‘자치경찰제 개선 추진단’을 구성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관계자는 “자치경찰제 시행 3년의 경험을 토대로 현장 상황에 최적화된 운영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대통령 소속 지방시대위원회 내에 자치경찰제 개선 특별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방안을 하반기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도와 함께 시·군·구 자치경찰제 병행 방안도 검토해야 할 과제다. 자치경찰제 도입 취지가 지역실정에 맞는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필요한 조치다. 기초자치단체들은 단계적으로 대도시 중소도시 농촌 등 다양한 형태의 기초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해 성과를 검점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범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정책연구실장은 “시·군·구 특성과 지역주민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기초단위 자치경찰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그 결과를 반영한 전면도입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