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성인 범죄로 확대 추진
경찰 ‘서울대 N번방’ 사건 계기로
과도한 기본권 침해 우려가 걸림돌
경찰이 기존에 미성년자 범죄에만 한정됐던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학 동문들의 졸업 사진 등을 이용해 성범죄물을 제작·유포한 소위 ‘서울대 N번방’ 사건이 발생하면서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금 높아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은 최근 서울대 N번방 사건이 알려진 후 디지털성범죄 현황과 함께 위장수사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대책 검토 방향을 국회에 보고했다.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는 박사방·N번방 등의 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돼 2021년 9월 개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동청소년성보호법) 시행에 따라 정식 도입됐다.
하지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성범죄에 대해서만 경찰의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를 허용한 것이라 성인 성 착취물 등은 법적 근거가 없어 위장수사가 불가능했다.
◆치명적 피해 당한 성인도 속출 =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가운데 성인 비율이 적지 않고,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과 공포감이 연령에 관계없이 치명적이라 법개정 논의 당시에도 수사 대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청이 2022년 3~10월 시행한 사이버성폭력 사범 집중단속 결과를 보면 범행 대상이 된 피해자 총 678명 중 성인은 420명으로 61.9%를 차지했다.
최근 논란이 된 서울대 N번방 사건의 피의자인 서울대 졸업생 박 모씨의 신상을 특정하고 검거할 수 있었던 데는 2년여간 공범을 자처하며 텔레그램으로 접촉을 시도한 ‘추적단 불꽃’ 소속 민간 활동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위장수사 제도의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고 본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개정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이 시행된 2021년 9월부터 작년 말까지 위장수사를 통해 검거한 인원은 1028명, 구속 인원은 72명에 달한다.
◆국회·관련부처 숙의 필요 = 다만 경찰이 위장수사를 남용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과도한 기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경찰 안팎에서는 국회는 물론 법무부, 개인정보위원회 등 관련부처 협의 과정에서 이 문제가 깊이 다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디지털성범죄에서 아동·청소년대상 범죄에 한정하지 않고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의 특례를 적용하는 조항이 담긴 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돼 계류돼 있다.
지난 2021년 11월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소위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국회서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