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뛰는 경찰 위에 나는 디지털 성범죄자

2024-05-31 13:00:03 게재

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동문들의 졸업사진 등을 이용해 성범죄물을 제작·유포한 소위 ‘서울대 N번방’ 사건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유 총장은 재발방지 대책과 피해자 보호를 위해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주변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위장수사를 도입했다. 이는 증거수집과 범인검거에 필요한 경우 경찰관이 신분을 숨기거나 위장해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대상을 미성년자 대상 범죄로 국한했다.

위장수사의 효과가 검증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위장수사로 검거한 피의자가 1028명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로까지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도 이를 추진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피해자 가운데 성인 비율이 60%가 넘는다.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과 공포감은 연령에 관계없이 치명적이다. 하지만 익명성 높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범죄에 경찰은 용의자 특정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뛰는 경찰 위에 나는 범죄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범죄자들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인터넷 접속을 끊고 잠적하거나 대화방을 닫아버린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의자를 검거한 데에는 2년여간 신분을 감추고 공범을 자처하며 SNS로 접촉을 시도한 시민단체 활동가의 역할이 컸다.

과거에도 국회 차원의 위장수사 도입 움직임은 있었다. 또 2021년 11월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발의한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도 있다. 개정안에는 피해자가 성인인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도 위장수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21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입법화되지 않는 것은 개인정보보호 등 과도한 기본권 침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당연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 관련부처 국회 수사기관 등이 지혜를 모아 위장수사가 필요한 상황을 명확히 열거하는 방식으로 법제화하면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여기에 선의의 피해자를 줄일 영장 청구 절차 등 규제책도 마련한다면 인권침해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사회의 지혜를 모으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