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속증여 세제 개편으로 노년층 상속 빈곤 막아야

2024-06-03 13:00:00 게재

지난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딸에게 사준 아파트에서 쫓겨나 집 문 앞에서 숙식하는 80대 할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본 적이 있다. 행여 자식이 서운해 할까봐 마음이 약해져 피 같은 노후자금을 자식에게 다 주고 비참한 노후를 보내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솟구쳤다.

노년의 돈은 어찌 보면 목숨과도 같다. 그 목숨을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결국 버림받는 이른바 ‘상속 빈곤층’의 전형적인 예다.

‘상속 빈곤’ 노년층 가난의 큰 원인

우리나라는 10년이 넘도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OECD 평균인 14.2%보다 3배나 높다.

이러한 노인빈곤은 사회적 고립과 노인자살로 이어진다. 2021년 전체 자살자 중 60대 이상이 35.4%가량을 차지했고, 특히 80세 이상이 모든 세대 중 자살 비중이 가장 높았다.

연금 부족, 의료비 부담, 고용 불안정성 등 노인빈곤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여기에 자녀의 상속 조바심 혹은 부모의 무한한 내리사랑, 또는 법을 잘 몰라 재산을 미리 다 물려주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과세당국이 진행한 상속세 관련 심판은 307건으로 전년 대비 35%나 상승했다. 한때 부자들의 일이었던 상속세가 국내총생산(GDP) 증가와 부동산 등 자산상승으로 중산층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도권에 집 한채만 있어도 상속세 대상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20년 넘게 그대로인 상속세 개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정부는 물론이고 조세재정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2.1%가 상속·증여세 부담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해외 역시 상속세 부담을 줄이거나 아예 폐지하는 추세다. OECD 회원국 중 14개국이 상속세가 없다. 21대 국회에서도 배우자 공제 확대, 최대 주주 할증 폐지 등 30건에 달하는 개정안이 상정되었지만 당리당략 때문인지 계류 상태였다가 자동 폐기됐다.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효심 가득한 전통문화를 자랑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국민 21%만이 ‘부모 봉양 책임 있다’라고 생각한다. 정부 복지 대책에서 노인은 중요 순위가 아니고, 국회의원들에게는 선거철 반짝 공약일 뿐이다.

안정적 노후 위해 상속법 개정해야

하루라도 빨리 부자감세라는 낡은 프레임을 벗어나 평생 모은 재산을 안정적인 노후 자금으로 쓸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증여보다는 상속이 유리하도록 상속법을 획기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OECD 회원국 중 일본(최고 55%) 다음으로 높은 과세표준 및 세율(최고 50%)의 현실성 있는 인하가 필요하다. 일괄공제액도 현재 5억원에서 집 한채 정도 되는 최소 10억원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 특히 부부의 경우 혼인 후 함께 모은 공동재산인 만큼 배우자 간에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하나다. 유년 청년 중년 그리고 노년, 인생 역시도 끝이 좋아야 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식과 국가를 위해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낸 분들이 지금의 노인세대다. 이들이 생의 끝에서 인간의 존엄과 품격을 누리며 인생은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반문의 여지없이 당연한 일이다.

박강수 서울 마포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