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애용하는 ‘휴대전화’…판도라 상자될까
후보 시절부터 정치인·참모·지인들과 수시로 통화·메신저
통화 녹음·메신저 공개되면 자칫 정치·사법적 논란 가능성
국정농단 수사 당시 박근혜-정호성 통화 녹음 ‘결정적 증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정치 입문하던 시절부터 함께했던 한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 달리 휴대전화 소통을 너무 자주한다. 국회의원이나 참모 뿐 아니라 사적 지인들과도 수시로 메신저를 주고받고 통화한다. (윤 대통령) 본인은 그걸 녹음하지 않겠지만, 상대방은 다르다. 대통령과의 통화나 메신저를 기록으로 남길 가능성이 높다. 국정농단 수사 당시 정호성 비서관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를 녹음해놨던 게 수사의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세 차례 휴대전화를 건 기록이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의 ‘휴대전화 애용’이 새삼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를 이용해 주변과 나눈 통화와 메신저가 자칫 정치·사법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는 정권 초부터 제기됐다. 윤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과 달리 개인 휴대전화를 이용해 주변과 자주 통화하거나 메신저를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윤 대통령의 휴대전화가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이후 대선 후보→당선인→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항상 휴대전화를 이용해 주변과 자주 소통했다.
2022년 7월 27일 윤 대통령이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장면이 공개된 건 빙산의 일각으로 꼽힌다. 권 원내대표는 “저의 부주의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 내용이 노출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라며 ‘본인 책임’으로 돌렸지만 윤 대통령의 ‘휴대전화 애용’이 불러올 참사의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이후에도 수많은 정치인·참모·지인과 통화하고 메신저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여당 중진과 ‘내밀한 협의’를 할 때도 메신저를 주로 사용했다는 후문이다. 정치인들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특정인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하기도 했다는 전언. 다른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보낸 메신저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게(메신저 내용)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며 “특수부 검사 경험에서 비롯된 자신감인지 뭔지 이해가 잘 안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여당 의원은 “가끔 통화한다”는 경험을 전했는데, 통화 내용은 자칫 ‘당무 개입’이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역대 대통령은 정치인·참모·지인과 연락할 때는 대부분 부속실을 거쳤다고 한다. 윤 대통령처럼 자신의 개인 휴대전화를 이용해 통화하고 메신저를 나누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는 게 정치권 인사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등을 통해 간접 전달되는 게 통상적인데 윤 대통령이 전례를 깬 것이다.
여권에서는 “격의 없는 소통”이라고 호평하기도 하지만,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여권에선 2017년 국정농단 수사를 거론한다. 당시 정호성 비서관의 자택에서 압수된 휴대전화에는 박 전 대통령과의 통화가 다수 녹음돼 있었고, 이 녹음은 박 전 대통령의 유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박 전 대통령 본인은 기억도 못할 통화 내용이 자신의 유죄를 이끌어내는 물증이 된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 주변에서 ‘휴대전화로 자꾸 통화하거나 메신저를 보내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윤 대통령이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이 참모나 정치인과 격의 없이 자주 소통하는 건 장점이 되겠지만, 대통령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분명 있다. 더욱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타의에 의해 공개될 경우 정치·사법적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윤 대통령이 휴대전화 습관을 끊는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윤 대통령 휴대전화와 주변 사람들에게 수백, 수천 개의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조 국 대표는 1일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에서 “윤 대통령은 개인 스마트폰을 공수처에 제출하라”며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처럼 얍삽하게 스무 자리 비밀번호를 만들어 놓지 말고 풀어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