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풍선’에 터져버린 9.19군사합의
확성기·전방훈련 족쇄 풀려
적대행위 가능 위험고조
탈북민단체의 대북 삐라(전단)가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과 GPS 교란으로 되돌아오더니 결국엔 남북간 충돌을 막는 안전핀으로 여겨지던 9.19군사합의에 대한 사망선고로 이어졌다. 이로써 대북 확성기 방송이라는 심리전은 물론이고, 적대행위 금지구역 내 군사훈련까지 재개될 공산이 커졌다. 사소한 오해나 실수로도 물리적 충돌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남북관계가 재현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에서 남북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키로 한 뒤 이를 4일 국무회의 안건으로 정식 상정했다. 4일 오후로 예상되는 대통령 재가까지 마치게 되면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는 사실상 아무런 효력도 없는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9.19군사합의 효력이 정지되면 대북 심리전의 핵심인 대북 확성기 방송과 우리 군의 최전방 지역 군사훈련을 가로막는 법적 제약이 해소된다.
대북 확성기 방송 금지는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체결한 판문점 선언에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은 국회 비준동의나 국무회의 의결 등 발효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정지 역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대신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9.19 군사합의를 다시 국무회의 의결로 효력을 정지시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더라도 남북관계발전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9.19군사합의 서문에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가 규정돼 있다.
9.19군사합의 효력이 정지되더라도 곧바로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일단 북한이 오물풍선 살포를 중지키로 한 만큼 일단 방송재개를 위한 준비를 마친 뒤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 경우 실행할 공산이 커 보인다.
대북 확성기는 최전방 지역 24곳에 고정식이 설치돼 있었고 이동식 장비도 16대가 있었다. 그러다가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라 고정식 확성기는 철거돼 창고에 보관 중이고 이동식 장비인 차량도 인근 부대에 주차돼 있다.
대북 확성기 뿐만이 아니다. 9.19합의가 효력 정지되면 전방에서의 훈련도 자유롭게 실시할 수 있게 된다. 9.19 군사합의엔 △적대행위 전면 중지 △육상 및 해상 완충구역(적대행위 금지구역) 내 포사격 및 기동훈련 금지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감시소초(GP) 철수 △비행금지구역 설정 △JSA 비무장화 △남북 공동 6·25 전사자 유해 발굴 △한강 하구의 평화적 이용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군사분계선 상공 비행금지구역’(1조 3항) 조항을 효력 정지했는데 이번엔 모든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하순 우리 측의 비행금지구역 효력 정지에 대응해 전면 폐기를 선언했다. 이후 GP 복원과 JSA 재무장화 등 합의 조항을 무력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우리 군도 상응조치를 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화한 부분이 많다.
그러면서도 적대행위 중지구역 내 군사훈련은 자제했는데 이번 조치들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