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양성의 길

“바이오헬스 혁신 위한 의사과학자, 국가 책임 육성”

2024-06-04 13:00:00 게재

병역 개선-병원연구 촉진-산업과 선순환 환경 조성 필요 … “의대정원 일정 비율 확보”

코로나19 대유행이 세계를 휩쓸고 가는 동안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자발적 방역 참여와 건강보험 지원 결과 코로나19 대응에 성공적 사례로 거론된다. 하지만 국내 보건의료체계에서 공공의료의 부족과 더불어 백신과 치료제의 높은 대외 의존도는 반성해야 할 대표적 사례로 드러났다. 특히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인력이 양성돼 있지 않으면 감염병 유행 시기에 달성할 수 없다. 최근 의사과학자 양성이 화두다.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본 인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도 바이오헬스 혁신을 위해 의사과학자 양성에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군 입대와 개원 의사보다 낮은 연봉 해결, 임상과 연구 병행 지속 가능한 환경과 법적 제도적 뒷받침 등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 다가올 감염병 유행에 대응하고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위해 의사과학자 양성 환경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관련해서 현재 지적되는 문제점들과 대안을 찾아봤다.

임상과 과학적 소양을 갖춘 의사과학자 양성이 의료계와 바이오산업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국가 책임 하에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김은정 국회 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양성된 의사과학자를 바이오헬스산업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의사과학자 양성부터 연구지원까지 안정적으로 연구환경을 제공하고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전주기적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조사관은 “의대 정원의 일정 비율을 의사과학자 양성과정에 배정하고 국가 책임의 강력한 추진체계를 마련해 정책집행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 융합연구지원센터 연구진이 랩실에서 연구 활동 중이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제공

◆날로 커지는 바이오헬스시장, 의사과학자 확보 중요 = 의사과학자가 진출할 분야는 다양하다. 보건복지부와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의사과학자가 다루는 연구분야는 주로 미래 질병을 다루는 ‘예측의학’, 인공장기를 활용하는 ‘재생의학’, 난치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 등 이다.

예측의학에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반 정밀의학, 개인별 맞춤형 생체주기 분석과 진단, 최첨단 스마트 의료기기와 영상기기 개발 등이 포함된다. 재생의학에는 3D 바이오 프린팅 기반 인공장기 개발, 줄기세포 재상치료제 개발, 생체융합기술, 스마트 의료용 나노소재 개발 등이 있다. 신약 개발에는 방사광가속기와 극저온 전자현미경 이용 구조기반 신약개발, 환자 맞춤형 세포와 유전자 치료제 개발, 표적 지향형 약물 전달시스템 개발 등이 있다.

이들이 활동할 대표적 시장인 글로벌 제약시장은 2022년 1조4820억달러에서 연평균 약 5%로 증가해 2027년에는 1조917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더욱이 기후변화로 인한 식생과 면역상황 변화에 따른 신종감염병 출현은 예견된 바 이 분야의 백신 치료제 진단키트 개발 등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의사과학자 양성과 활동 성적은 초라하다. 우리나라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연간 3800명 정도이지만 이중 기초의학을 진로로 선택하는 경우는 30명 정도로 1%도 되지 않는다. 의과대학 40개에서 기초의학 전공자가 30명에 그친다면 의사 면허를 가진 기초의학자가 없는 대학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서울대 의과대학원 의과학과(기초의학)의 의사면허를 가진 신입생은 2014~2018년 26명(연평균 5명)에 불과했다. 그 중에 병리학 예방의학을 제외한 기초의학 전공지원 의사는 2017년 0명, 2018년 1명 수준이었다. 연세대의 경우 연간 1~3명 수준이었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졸업생은 100명이 넘지만 의사과학자로 안착하는 경우는 졸업생의 10%에 불과하다.

◆미래 불안정 해소해야 참여 늘것 = 우리나라 의사과학자제도 운영을 보면 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진행하는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혁신형 의사과학자 공동연구사업’이 있다. 의대 졸업생 중 100여명이 과학연구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교육받는다.

의과대학 대부분도 의사과학자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대학은 자체 재원으로, 일부는 선발을 통해 정부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장학금 지급과 일부 시설-장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카이스트나 과학기술원의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이 운영하는 과정은 과학과목 비중이 더 높다. 3년간 집중적으로 의학교육을 실시하고 1년간 의학과 인공지능이나 바이오 융합교육을 실시한다. 이후 다시 의학과 과학을 융합해 4년간 박사과정을 밟게 한다.

이러한 과정 운영이 있지만 아직 의사과학자 양성이 활발해지지 않은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연구 급여나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의사과학자는 병원에 채용되는데 연구업무에 진료업무까지 부담이 더해 질 뿐만 아니라 남자는 군입대로 인한 연구중단, 연구기금 지원 중단 등 연구개발의 단절이 진로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더욱이 국가연구개발 예산규모 대비 병원에 투입되는 금액은 열악한 수준이다. 2021년 국가연구개발 예산은 27조4005억원 가운데 1499억원(0.5%)에 불과했다. 공학을 전공한 의사가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고 수입이 더 많은 임상분야로 빠져 나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종감염병 대비와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위해 의사과학자의 양성의 국가적 주요 과제가 된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해외 주요국, 정부가 앞장서 생태계 조성 =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과학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했다.

미국은 1964년 정부 주도로 미국국립보건원에서 의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올해 4월 기준 미국 내 155개 의과대학 중 의사과학자 통합과정(MD-Ph.D)을 운영하는 의과대학은 122개(78.7%)에 이른다. 이중 국립일반의학과학연구소의 지원을 받는 곳은 54개다. 이 과정을 통해 매년 600명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1999년에는 개별적인 프로그램들을 통합하기 위해 국립보건원의 임상연구 교육 및 협력지원사무국을 설립했다. 실험실의 기초연구가 환자에게 실제 도움이 돼야 한다는 ‘실험실에서 병상으로’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06년에는 교내 및 교외 연구원 간 파트너십을 장려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확대해 2년간 최대 15만달러를 지원받아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일본은 미국사례를 모델로 해 2008년 공식적으로 도쿄의대에 ‘의사과학자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일본의 의사과학자 양성시스템은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과 더불어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지역의 중개연구 센터를 통해 계속 임상과 기초연구를 하면서 빠르게 발전했다. 특정지역을 생명과학 단지로 육성하고 연구비를 대규모로 증액했다.

일본의 의사과학자 양성 목표는 의학과 의료, 사회 변화의 급격한 발전에 대응할 수 있는 기초의학 연구자를 키우는 것이다. 문부성은 2011년 ‘연구성과 최적 전개지원사업’을 통해 대학 및 연구기관의 연구성과를 실용화할 수 있도록 학계와 산업계 간 기술이전을 촉진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기초연구 성과의 실용화 체계를 구축했고 사업화 지원 강화를 위해 지역단위 중개연구센터를 세우고 학제 간 연구를 지원할 수 있었다.

◆임상-연구 병행 지속 가능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 = 해외 주요국의 사례는 정부부처나 연구기관이 정부지원금을 통해 지원하고 있으며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단일 기관이 주도권을 가지고 산업계-학계-연구계를 통합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부처간 통합연계 부족이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통합 연계가 부족하다 보니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부처 사업에 참여한 이후 프로젝트가 끝나면 연구단절이 발생한다. 과기부에 따르면 개인기초연구자의 연구단절률은 2013년 28.7%, 2014년 28.8%, 2015년 32.0%, 2016년 38.9%로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때문에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컨트롤타워 확보와 관련 제도 정비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병역문제를 포함한 ‘의사과학자 양성 특별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12월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 회의를 통해 의사과학자 양성 전략을 제시했다. 최근 3년간 배출된 의사과학자는 의대 85명 과기원 57명 등 약 142명으로 연간 의대 졸업생 1.61% 수준이라며 주요국과 같은 3% 수준까지 양성 할 목표도 정했다.

의사과학자 양성과정 개선을 위해 예과와 본과로 분리된 의과대학 학제를 통합6년제로 개편하고 융합형 교육커리큘럽을 다양화한다. 석사-박사 학위 취득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전공의 지원확대와 연구시간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여성의사과학자 참여를 확대한다. 그리고 적정 비용을 지원하고 박사기간 경력을 인정할 것을 권고한다. 나아가 의사과학자가 교육현장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도록 리더연구자 양성을 확대할 계획이다.

홍승령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은 “우리나라 의사과학자는 병역문제와 병원에서 지속 연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야하는 특수성이 있다. 의사과학자들이 임상연구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환자들에게 도움되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나오길 희망하며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 양성 정책 및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신상훈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인재양성단장은 “사업 초기 3~5개 의대에서 지금은 전국 의대의 절반이 의사과학자 양성에 참여하고 있고 임상의로만 접근하던 의대생 및 의사들이 지원정책과 사업이 확대됨에 따라 의사과학자로서 연구를 병행하고자 하는 욕구가 많이 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 단장은 “앞으로도 의사과학자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지속될 수 있도록 바이오헬스 산업 및 의사과학자 양성 현장 접점에 있는 진흥원이 소통 창구가 되어 정책과 제도 수립에 현장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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