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정부주도 ‘전기본’ 폐지가 답이다
‘18기(23.9%) 대 33기(35.6%)’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명시된 원자력발전 운영기수(발전량 비중)다. 앞의 숫자는 문재인정부 때 수립한 8차 전기본, 뒤의 숫자는 윤석열정부가 수립한 11차 전기본에 담긴 내용이다.
8차 전기본에선 신규 원전 6기 중단, 노후 원전 10기 수명연장(계속운전) 금지를 못박았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수립한 10차 전기본에서 가동원전의 수명연장을 명문화한 데 이어 최근 발표한 11차 전기본에서는 신규원전 3+1(소형모듈원전 1기)기 건설계획까지 제시했다.
원전뿐 아니다. 액화천연가스(LNG)발전 비중 전망은 8차 전기본에서 18.8%(2030년 기준)로 수립했으나, 11차 전기본에선 25.1%로 늘려 잡았다가 2038년 11.1%로 급감한다.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 전망은 8차 20.0%, 11차 21.6%로 비슷하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를 바라보는 시선과 육성의지는 현격히 다르다.
수요전망도 편차가 크다. 8차 계획 때는 2030년 목표수요가 100.5GW였는데, 10차때 118.0GW(2036년)으로 늘더니 11차에서는 129.3GW(2038년)으로 대폭 증가했다. 10차 때와 11차 때의 차이 11.3GW는 대형원전(1.4GW) 8기에 해당하는 방대한 규모다.
이처럼 에너지가 이념화되다 보니 정권에 따라 정책이 널뛰기를 한다. 탈원전·친원전 등 결론을 정해 놓고 전력수급과 에너지믹스를 짜맞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망은 빗나가고 계획은 엇갈린다.
또 15년짜리 수급계획(11차 전기본 적용기간은 2024~2038년)을 세워 바인딩(binding)하고, 인허가와 연계하니 국가차원에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예를 들어 11차 전기본 실무안에선 원전 4.4GW(기가와트) 신설을 제안했다. 이 계획이 확정되면 전력공급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따라서 부지선정이나 기타 다른 문제로 착수가 늦춰지더라도 추후 전기본이 바뀌기 전까지는 다른 발전원으로 대체할 수 없다. 전력수급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상황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셈이다.
에너지기업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계획만 쳐다보며 경직되다 보니 산업의 역동적인 흐름에 배치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시스템 작동원리(시장)와 물리적·지역적 이슈(발전소 및 송·변전망 건설), 운영기준(계통운영) 등에 변수가 많아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만큼 정부가 주도하는 전기본을 폐지하고 시장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정부는 전력설비 규모와 에너지믹스를 계획(plan)하지 말고, 전망(outlook)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