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코스닥시장 유감
코스닥(KOSDAQ)은 1996년 설립된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이다. 첨단기술주들이 거래되는 미국 나스닥(NASDAQ)시장을 본떠 만들어져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목적으로 한다. 유가증권(KOSPI)시장에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면 코스닥시장에는 신생기업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코스닥시장은 투자자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있지 못하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후 성공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대부분 코스닥을 떠나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겨가곤 했다. 최근에는 코스닥 시가총액 7위 기업이었던 HLB가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NHN 카카오 셀트리온 등이 코스닥을 떠난 바 있다.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하더라도 회사나 주주들에게 바뀌는 것은 거의 없다. 부실한 종목들이 코스닥에 많이 상장돼 있어 이들과 같은 시장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불명예스럽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나스닥에서 성장한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뉴욕증권거래소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시장 평판 저하로 코스닥 떠나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겨가는 기업들
코스닥시장의 장기성과는 부진하다. 구성종목이 너무 많이 바뀌어 적절한 비교는 어렵지만 6월 5일 코스닥지수 850포인트는 IT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2000년 3월의 사상 최고치 2925포인트의 1/3을 밑도는 수준이다. 최근 10년의 연평균 수익률도 4.6%에 불과하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장기투자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고 있다.
코스닥은 상장 종목 숫자가 많다. 6월 5일 현재 코스닥시장 상장 종목수는 1639개(ETF와 스팩 제외)로 한국 주식시장의 맏형이라고 볼 수 있는 유가증권시장 838개 대비 거의 두배에 달한다. 미국 나스닥 상장 종목수 3340개 대비 절대 숫자는 적지만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코스닥 상장종목수는 오히려 많아 보인다. 나스닥을 제외한 세계 주요 성장주 시장들인 대만 그레타이 819개, 영국 AIM 627개, 일본 마더스 297개 등과 비교해 봐도 코스닥 상장 종목수는 압도적으로 많다. 상장종목이 너무 많다 보니 코스닥시장에서는 ‘묻지마 투자’가 횡행할 개연성이 높다. 극심한 정보 비대칭성은 불공정거래 행위를 발생시킬 개연성을 높였고, 이는 시장의 평판도 저하로 귀결돼 왔다.
코스닥은 영세하다. 상장종목수는 유가증권시장 보다 훨씬 많지만, 이들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쳐도 409조원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한 종목 시가총액 499조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종목들이 코스닥을 떠난 탓도 있겠지만 코스닥시장은 빅스타보다는 고만고만한 종목들이 모여있는 시장이 돼버렸다.
코스닥시장은 대한민국의 개인투자자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안겨줬다. 한국 주식시장은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주력인 유가증권시장과 개인투자가들이 중심인 코스닥시장으로 양분돼 있다. 2000년대 유가증권시장 전체 거래대금에서 개인투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56%이고, 코스닥시장은 87%다.
벤처기업에 자금공급 했지만 수익률로 보상받지 못한 개인투자가들
한국의 많은 벤처기업들이 코스닥시장을 통해 상장됐다. 상장은 주식을 팔아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다. 한국의 개인투자가들은 기꺼이 벤처기업들에게 자금을 공급해줬지만 이런 행위는 수익률로 보답받지 못했다. 신생기업들이 코스닥시장으로 입성하는 절차인 기업공개(IPO)는 이들 기업에 대한 초기투자자인 벤처캐피털 등이 투자지분을 회수하는 기회로 활용됐다.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벤처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지만, IPO는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가들의 부를 전문적 투자자로 이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 너무 많은 종목이 상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때는 벤처입국의 상징으로, 한때는 창조경제의 본산으로, 한때는 신성장 산업의 핵심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코스닥시장은 들뜬 나팔소리가 지나가고 난 후 결과적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 상처를 줬다. 코스닥시장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