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금융 피해…해외 당국 ‘실효적 피해구제’, 한국은 ‘분쟁조정 배상 절차’
금융당국 보상·배상 방식 차이 … 신속한 피해구제 절차 필요
미국 뉴욕주 금융국(NYDFS)은 지난 2020년 3개 보험사에 불완전판매 등을 이유로 93만달러의 제재금을 부과하는 동시에 피해 소비자에게 약 100만달러를 보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링컨 라이프 등 3개사는 2011년부터 2019년 기간 중 소비자들에게 일반 거치연금 계약을 즉시연금 계약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면서 설명의무 등을 위반했다. 기존 보험계약과 연금수령액 등을 포함한 비교설명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3개 보험사 적발을 계기로 업계 전체의 유사한 부당 영업관행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185만달러의 제재금과 330만달러의 소비자 보상 조치를 취했다.
한국에서 유사한 불완전판매 행위가 발생했다면 제재조치와 별개로 피해자들은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해 분쟁조정을 받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지만 보상 또는 배상을 받을 수 있다. 분쟁조정에서 소비자에게 유리한 결정이 나오더라도 조정안을 토대로 금융회사의 자율배상이 진행될 뿐이지 금융당국 결정의 강제력이 없어서 신속한 피해구제가 어렵다.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내부적으로 주요적 금융소비자 피해 사례를 모아서 ‘해외 금융감독당국의 조치 사례 및 시사점’을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해외 주요국 금융당국의 소비자 피해 관련 조치 및 피해구제 사례를 조사해 국내 유사사례 대응에 참고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단순 참고용이라는 입장이지만 현 제도하에서는 피해구제를 공개적으로 강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향후 제도개선 논의가 뒤따를지 주목된다.
◆홍콩, 투자원금 60~70% 환매 결정 = 홍콩금융관리국(HKMA)과 증권선물위원회(SFC)는 중국은행(홍콩), ICBC(아시아) 등 16개 은행이 2002년부터 2008년 기간 중 리만브라더스가 발행한 미니본드 상품을 개인투자자들에게 대량으로 판매한 사건과 관련해 피해구제 명령을 내렸다.
은행이 약 3만명의 투자자로부터 투자원금의 60~70%(65세 이상은 70%, 65세 미만은 60%)의 가격으로 해당 증권을 환매하도록 했다. 보상금액은 약 1조원에 달한다.
해당 상품은 우량한 기업과 금융회사들을 준거 자산으로 삼은 신용연계채권으로 자산의 신용등급이 크게 떨어지거나 부도가 발생하지 않으면 예금이자보다 높은 금리의 쿠폰을 지급했다. 하지만 신용등급 강등과 부도가 발생하면 원금을 전액 잃게 되는 구조의 상품이다.
당시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은 판매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원금 손실 위험을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 적격 일반투자자 전원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보상하는 방안에 금융당국과 은행이 합의했고 해당 합의 이행을 조건으로 금융당국은 미니본드 판매 관련 조사를 중단했다.
◆영국, 보험료와 이자까지 환급 명령 =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영국은행들이 대출 또는 신용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지급보증보험(PPI)을 판매하면서 발생한 불완전판매 사건에서 수수료(보험료)와 이자까지 고객에게 돌려줄 것을 명령했다.
PPI는 은행이 일반 대출 또는 신용카드 이용에 부가해 판매하는 보험으로, 차주가 예상치 못한 사고 및 질병 등에 의한 사망 또는 실직으로 인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 보험사가 신용카드 및 각종 채무를 대신 상환해주는 보험계약이다. 가입건수만 6400만건에 달했다.
FCA는 금융회사에게 모든 PPI 상품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점검토록 하고 조사 결과 불완전판매로 확인된 계약에 대해서는 수수료(보험료)는 물론 이자까지 환급해 주도록 명령했다. 해당 조치 이후 수년에 걸쳐 소비자에게 총 290억파운드가 환급됐다.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FCA는 영국 신용카드회사인 뱅퀴스(Vanquis)가 신용카드 발금 과정에서 고객에게 ROP(Repay Option Pay) 상품을 충분한 정보제공 없이 권유 및 판매한 사건에서 회사가 피해 고객에게 1687만파운드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조치했다.
ROP는 카드대금 상환 옵션의 한 종류로, 최대 2년의 무이자 일시정지, 특정 월결제 유예 등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유연한 대금상환을 돕는 서비스다. 미상환 잔액에 대해 최대 79%의 이자율이 적용됐지만 관련 내용을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에서는 웰스파고 은행이 고객동의 없이 계좌를 개설한 사건에 대해 당국이 고객 피해보상 목적으로 회사에 최소 500만달러의 기금을 적립하고 피해보상 계획을 수립해 실행하도록 했다.
미국 통화감독청은 웰스파고 은행 유령계좌 사건의 근본 원인이 은행의 잘못된 정책 및 내부통제 실패에 있다고 판단, 금전제재 및 피해구제 조치와 별개로 은행으로 하여금 개선방안을 마련해 감독당국에 보고하도록 했다. 또 당시 은행장에게 책임을 물어 은행권 취업제한과 1750만달러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보고서는 “해외 주요국 금융감독기관은 제재조치 부과시 피해고객 구제방법과 절차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마련하도록 요구함으로써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제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