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종료 고심하는 기재부…핵심변수는 ‘여론’
1분기 법인세 펑크로 또 ‘세수결손’ 우려 … 국제유가도 안정세
유류세 인하 중단하면 한달 4500억~5000억원 세수 추가 확보
“재벌·집부자 세금은 깎아주면서 국민은 홀대?” 여론확산 우려
햇수로 4년째 유류세 인하를 연장해 오던 기획재정부가 이달 말 ‘연장 종료’를 고심하고 있다. 올초 법인세 급감으로 2년째 세수부족사태가 확실해지고 있어서다. 최근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찾고 있다는 점도 호조건이다. 유류세 인하 연장을 종료하면 하반기에만 3조원 안팎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여론이다. 윤석열정부 초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에 이어 최근 반도체산업 26조원대 지원 등으로 ‘부자감세’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생계와 직결된 ‘기름값 인상’이 현실화되면 이런 논란이 더 커질 수 있어서다. “재벌이나 집부자에겐 천문학적 규모로 세금을 깎아주면서 일반 국민들은 차별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법인세 부족분 유류세로 만회? = 10일 기재부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 연장을 종료하면 하반기에는 한 달 평균 4500억~5000억원의 세수가 추가로 걷힐 전망이다. 유류세 인하 종료 후 7월부터 12월까지 매달 5000억원 정도로 유류세가 걷힌다면 하반기에만 3조원가량의 추가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올해 1~4월 국세 수입은 125조6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8조4000억원 덜 걷혔다. 56조원 가량의 세수 펑크가 발생한 지난해(38.9%)보다도 낮은 진도율이다. 작년 하반기 반도체 경기 불황 등으로 법인세수가 크게 감소한 영향이 컸다.
앞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작년과 같은 대규모 세수 결손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 등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 확대 등 감세 정책이 줄줄이 나온 상황에서 줄어든 세수를 추가 확보할 세수 항목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중장기적 국가 재정을 위해서라도 유류세 환원(인하 조치 중단)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예상보다 안정적 = 여기에 국제유가 추이도 나쁘지 않다. 올 초까지만 해도 업계에서는 하반기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 모두 배럴당 70달러 중후반~80달러 초반 선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는 이달 들어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4일(현지시각)에는 WTI와 브렌트유 모두 넉 달 만에 가장 낮은 가격을 기록하기도 했다. 앞서 열린 OPEC+(OPEC과 주요 산유국 연대체)의 감산 회의 영향이 컸다. 회의에서 석유수출국들은 올해 10월부터 내년 9월까지 1년에 걸쳐 감산규모(현재 하루 200만배럴)를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 시그널로 국제유가가 다시 반등하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70달러대에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국제유가는 2~3주 뒤 국내 소비자 가격으로 반영된다.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유류세 인하 연장 종료 시점인 이달 말에는 국제유가 영향으로 인한 국내 유가 부담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
◆여론추이에 촉각 =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찮다. 기재부가 2021년 11월 유류세 인하 결정 이후 9번에 걸쳐 유류세 인하 정책을 연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물가 안정’이다.
통계청이 이달 4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석유류 물가상승률은 3.1%로 나타났다. 전월(1.3%)보다 오름세가 확대됐으며, 지난해 1월(4.1%)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전히 소비자 체감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섣불리 유류세 인하 연장 조치를 종료하면 물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유류세 인하율은 이달 말까지 휘발유 25%, 경유·액화석유가스(LPG)·부탄 37%이다. 유류세 인하 전 세율 대비 리터당 △휘발유는 205원 △경유는 212원 △액화석유가스(LPG)·부탄은 73원의 가격 인하 효과를 보고 있다. 최근 1600원~1700원 수준인 휘발유 가격이 유류세 인하조치를 중단하면 다시 1900원대에 육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칫 일반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워 여론악화의 화약고가 될 우려도 있다. 이미 ‘부자감세 정부’로 낙인 찍힌 윤정부에 대해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식의 국민감정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가 유류세 인하종료의 대내외 여건개선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 연장 종료는 매번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한 것은 없다”며 “국제유가뿐만 아니라 물가 영향, 세수 영향 등을 종합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기재부는 인하조치가 만료되는 그달 중순쯤 유류세 인하 연장 여부를 결정해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