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그림 ‘국보법 위반’ 재심 청구
“안기부 불법체포·가혹행위”
전승일 감독 “여전히 고통”
1989년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제작했다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끌려가 유죄 선고를 받은 전승일 감독이 35년 만에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전 감독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10일 오후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안기부가 체포영장 없이 불법 체포하고, 가혹 행위를 일삼았고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구속기한을 연장했다”며 재심을 청구한 이유를 설명했다.
전 감독과 재심 변호인단은 “6.10항쟁 기념일인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재심청구했다”며 “재심 개시 이후 민주화운동 관련된 것으로 인정된 행위가 국보법 위반이 되는지 다툴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전 감독은 서울대 서양학과 재학 중이던 1989년 3월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을 캠퍼스에 전시했다가 ‘북한 주장에 동조해 이적표현물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국보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1991년 4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변호인단은 당시 안기부가 전 감독을 체포영장 없이 체포·감금한 뒤 협박, 모욕, 감시,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법령도 준수하지 않은채 구속기간을 연장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전 감독은 회견에서 “힘없는 대학생이 19일 동안 밀실에 갇힌 기억은 영혼까지 파괴된 깊은 상처를 남겼다”며 “35년이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이것이 인간은 존엄하고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파괴되면 안 된다는 인간 존엄과 권리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전 감독은 2007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외상후스트레스(PTSD)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전 감독은 당시를 기억해 포스트 트라우마를 주제로 ‘구토’ ‘PTSD1’ 등의 작품을 제작해 왔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