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조기총선 앞두고 헤쳐모여
우파좌파 합종연횡 만연해 정치권 요동 … 다급해진 마크롱 극우에 맹공
마크롱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1시간 30분에 걸친 기자회견을 통해 극우 국민연합(RN)과 자신의 대선 경쟁 주자였던 RN의 마린 르펜 의원을 공격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았다.
그는 프랑스 내 극우 세력의 부상에 대해 “내가 시민들의 정당한 우려에 충분히 신속하고 근본적으로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던 탓”이라며 “내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자책했다.
또 일부 지역의 계급 하락에 대한 두려움, 농촌 지역의 불안감, 박탈감 등이 극우 세력 지지로 이어졌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내가 모든 일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했다면 오늘 여러분 앞에 있지 않았을 것이고 의회를 해산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RN의 부상에 대해선 국민 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거론하며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그는 “RN이 집권하면 여러분의 연금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이를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연금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 뒤 “RN이 집권하면 주택담보 대출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자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대출 비용도 상승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아울러 “RN이 집권하면 우리의 가치, 이중국적이나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우리 시민은 어떻게 되겠느냐”며 RN의 반이민 노선을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금 RN이 추진하는 공약들은 여러분의 불안을 해결할 수 없고 그들은 구체적인 대응책도 없다”며 “극우 총리가 임명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라고 촉구했다. 최대 경쟁자가 된 르펜 의원을 향해서도 “르펜 후보가 내가 사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대선을 다시 치르고 싶어 하는 걸 이해한다”면서 “나는 그에게 헌법을 다시 읽을 것을 권한다”고 지적했다.
우파 내부에서는 정통 우파 공화당이 극우 국민연합(RN)과 연대를 둘러싸고 내분에 휩싸였다.
공화당은 이날 오후 긴급 정치국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극우와 연대를 결정한 에리크 시오티 당 대표를 제명하기로 했다고 일간 르몽드가 보도했다.
아니 주네바르 공화당 사무총장은 “시오티는 당헌과 노선을 위배했다”면서 “공화당은 독립적으로 프랑스 국민에게 후보를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은 9일 끝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단 6석(7.2%)를 얻어 5위에 그치는 부진을 면치 못했고 시오티 대표는 11일 TV 인터뷰에서 공화당의 기존 노선과 달리 RN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샤를 드골이 설립한 당의 후신인 공화당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수호자를 자임하며 파시즘과 극단주의에 맞서 왔기에 극우 정당인 RN과는 정치적 노선이 정반대인 셈이다.
RN의 전신이던 극우정파는 이슬람 혐오, 홀로코스트 부정 등의 이유로 프랑스 내 다른 정당의 기피 대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샤들 드골,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등과 같은 대통령을 배출한 공화당에서는 충격과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명 결정 외에도 공화당 출신 현직 장관 7명은 12일 공동 기고문을 통해 “드골 장군의 후계자들이 세운 이 당의 모든 것을 배반하는 행위”라며 시오티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시오티 대표는 자신의 제명 소식에 즉각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오늘 개최된 회의는 당규를 명백히 어긴 채 진행됐다. 이 회의에서 이뤄진 어떤 결정도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다”고 반박한 뒤 “나는 당원들이 선출한 우리 정당의 대표이며 앞으로도 대표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한 내홍이 예상된다.
우파 진영의 내홍에 비해 좌파 연합 ‘인민 전선’은 정당 간 선거구 배분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전체 577개 선거구 중 546개 선거구를 기준으로(해외 영토와 코르시카 제외)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229곳, 사회당은 175곳, 녹색당은 92곳, 공산당은 50곳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이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을 기준으로 조율했다.
한편 프랑스 조기총선의 1차 투표는 오는 30일, 2차 투표는 내달 7일 실시하며 공식선거 운동은 오는 17일 시작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