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야당 탓 거부권 잦다? 과거 여소야대 때는 달랐다
여당 “거부권 과거보다 많다지만, 거대야당의 독주 결과물”
여소야대 겪은 노태우·김대중·노무현·문재인 거부권 ‘절제’
민주, 대통령 거부권 행사 제한 ‘이해충돌방지법 개정’ 추진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거침없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앞으로도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건의할 것”이라며 ‘거부권 행진’을 예고했다. 여권은 ‘거부권 정국’ 책임을 거대야당에게 미룬다. 국회가 여소야대라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과거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거부권이 쏟아졌을까. 역대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에서도 거부권 행사를 최대한 절제했다는 게 거부권 행사 통계에 나타나 주목된다.
13일 여권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거대야당의 ‘횡포’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강조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일 “(거부권 행사는) 민생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권” “거부권 행사가 과거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는 거대야당의 의회 독주 결과물” “민주당의 일방독주로 엉터리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임기 2년 동안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총 10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거대야당의 폭주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남은 임기 동안 더 많이 행사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여권의 주장처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최소한의 방어권’일까.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취임한 노태우(7회) 김영삼(0회) 김대중(0회) 노무현(6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문재인(0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통계를 보면 일단 횟수가 윤 대통령(10회)에 비해 훨씬 적다. 역대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는 임기 5년 동안 이뤄진 횟수라는 점에서 2년 만에 10회를 행사한 윤 대통령은 “너무 잦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여권의 ‘거대야당 책임론’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노태우·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야당이 과반을 넘기는 여소야대 기간을 겪었지만 거부권 행사를 참았거나 최소화했다는 분석이다. 노태우·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 기간 동안 거부권을 종종 행사했지만 윤 대통령에 비해선 빈도가 낮다. 김대중·문재인 대통령은 여소야대 시절에도 거부권 행사를 끝까지 참았다.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3월 발행한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해외사례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빈도를 보면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감소하는 추세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은 한미 양국의 추세도 거스르는 셈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은 정국을 점점 더 냉각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우려를 낳는다. 국회가 다수 찬성으로 통과시킨 법안을 대통령이 수시로 거부한다면 여야가 협치 정국을 조성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다수당을 찍어준 총선 민심에 반하는 대응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여론을 등지는 결과도 우려된다. 윤 대통령이 남은 3년 동안이라도 거부권 행사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야권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13일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특검법이 대통령 본인과 가족 등 사적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자신과 김건희 여사가 관련된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