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횡령 사건…‘서류 위조’ 허위 차주 내세워 대출금 빼내
금감원, 취급된 여신 ‘실제 차주 확인 중’
내부통제시스템도 검사 … 횡령직원 구속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00억원 규모의 횡령은 직원이 서류를 위조해 대출금을 빼돌린 사건이다. 금융당국은 기업에서 대출을 신청한 적이 없었는데 마치 대출이 발생한 것처럼 속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횡령한 직원이 자백한 100억원 이외에도 더 많은 사기 대출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13일 경남 김해서부경찰서는 횡령 직원 A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A씨는 100억원 가량을 횡령해 해외선물, 암호화폐 등에 투자했으며 이 중 60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12일 우리은행 본점에 대한 현장검사에 착수해 A씨가 취급한 여신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기업대출이 나간 경우 차주와 연락해서 실제로 대출을 받았는지, 대출금액이 맞는지를 확인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A씨가 경찰에서 횡령을 자수했고 규모가 100억원이라고 자백했지만, 얘기를 안 한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취급했던 여신들도 다 들여다봐야 한다”며 “검사와 계좌추적을 통해 A씨의 범죄 수법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조한 대출 관련 서류를 통해 손쉽게 자금을 빼돌릴 수 있었다면 횡령 금액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또 우리은행 내부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검사도 벌이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비단 A씨 횡령 사건뿐만 아니라 기업대출을 취급하는 지점들에서 유사한 사고가 벌어질 개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점 차원의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었는지, 일정 금액 이하 대출에 대해서는 감리와 관련한 전결권을 영업점에만 맡겼는지 등도 살펴보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취임한 이후 내부통제 강화에 나섰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횡령이 벌어진 것은 사실상 내부통제시스템이 실패한 것이고, 본점과 일선 지점의 온도차이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대출 관련 업무 등이 디지털화 되면서 위조 서류 적발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점에서 발생한 대출의 서류들을 본점 차원에서 확인할 때 실물 원본이 아닌 디지털로 된 서류여서 진위 여부 확인이 예전에 비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최근 은행권에서 잇따라 발생한 배임 사건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위험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보가치를 부풀려 과다 대출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부동산 감정가를 조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지점들에서 벌어진 일련의 불법행위와 관련해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며 “여신 취급과 관련한 검사와 내부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