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윤 대통령 붙잡은 중앙아시아 정상들
윤석열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16일 새벽 귀국했다. 취임 후 17번째,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이후 6개월 만의 해외순방이다.
이번 순방은 유독 일정지연이 많았다. 5박 7일 중 출국이 늦어진 날이 절반에 육박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원인이 한국 아닌 방문국 쪽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첫 방문국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나던 11일에는 최고지도자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계획에 없던 공항 환송을 나와 윤 대통령의 발걸음을 늦췄다.
그는 윤 대통령의 차에 동승하더니 자국의 석유가스 개발과 미래형 신도시 건설 등 주요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번 국빈방문 계기로 성사된 가스전 탈황설비, 폴리머 플랜트 사업과는 별개의 중장기 프로젝트들이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구르반굴리 최고지도자가 친교일정에서 자국의 노후 플랜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윤 대통령의 식견이 마음에 든 듯 했다”며 “(윤 대통령이) 샤힌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12일 문화공연 관람 후 윤 대통령에게 즉석에서 40분가량의 차담을 제의하는가 하면 다음날 출국을 앞두고는 직접 환송에 나서며 예정에 없던 ‘철갑상어’ 오찬을 대접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출국이 예정보다 2시간 이상 늦었다.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 부부가 마지막 일정인 사마르칸트 문화유산 시찰에 동행하고 이어진 친교오찬에서 각종 공연과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등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윤 대통령 쪽이 양해를 구한 후 발길을 재촉하자 미르지요예프 대통령 부부 및 둘째 딸 부부까지 공항에 나와 윤 대통령을 배웅했다.
떠나는 손님을 만류하는 게 중앙아시아의 미덕인지는 모르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같은 순방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을 제외하고는 시장·장관급 인사들의 환송을 받은 전례를 보면 한결 더 대우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대통령실은 이런 장면들을 들어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끼리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고무된 반응이다. 중앙아시아가 과거 소련의 영토였고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영향을 받아 왔다는 점을 고려해도 “지정학적인 갈등이나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자유롭다”며 비교우위를 강조했다. 지난해까지 중·러와 각을 세우며 ‘가치외교’를 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합의한 약속, 규칙은 함께 지켜가되 상대국의 독특한 국내 정치적인 제도와 질서의 특이성은 존중해 간다”고 했다.
받으려는 게 많을수록 대접이 극진한 법이다. 이번 순방이 ‘대접받은 추억’보다는 ‘실속외교’로 기억되길 바란다.
이재걸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