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피해 급증하는데…속도 못내는 피해복구

2024-06-18 13:00:02 게재

복구 기간 1년 이상 소요돼

정부·지자체 대응 여전히 불안

더딘 복구, 행정절차 혁신해야

“매년 호우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피해복구에 1년 이상이 소요되는 실정입니다. 행정상의 이유로 사업이 지연되며 피해가 반복되는 상황은 국민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7월 탄핵 기각 이후 직무에 복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한 말이다.

이후 정부는 예방·복구 사업에 대해 별도의 패스트트랙을 마련하고 재해예방과 피해복구 예산도 크게 늘렸다. 집중호우에 대비한 대응훈련도 강화했고, 이행점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대비태세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격적인 장마기간을 앞두고 산사태·하천재해·지하공간 등에 대해 집중적인 피해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행율은 여전히 미흡하다. 피해방지대책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8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집중호우에 대비한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태세에 여전히 불안하다. 무엇보다 상습 침수 우려가 있는 반지하주택이나 지하차도 침수예방 사업의 진행속도가 더디다. 서울시의 경우 침수방지시설이 필요한 주택 2만8000호 가운데 최근까지 물막이판이나 역류방지시설 공사를 마친 가구는 1만5000여 가구에 불과하다. 경기도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최근 아파트 4610개 단지를 대상으로 지하주차장 물막이판 설치 실태를 조사했는데, 설치가 이뤄진 곳은 183개 단지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단지의 4% 수준이다. 반지하주택도 조사했는데 대상 주택 8861곳 가운데 물막이판 설치 가구는 5233곳(59%)에 그쳤다.

지난해 7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피해현장. 마을 뒷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이 초토화됐다. 예천 최세호 기자

지하차도 등 상습 침수도로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천시의 경우 오송지하차도참사 이후 37개 지하차도를 대상으로 위험도평가 용역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잇단 유찰로 사업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 용역은 올해 2월 시작해 7월 준공할 계획이었다.

더딘 피해복구도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복구기간이 과거에 비해 짧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국민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부족하다. 실제 2021년 8월 태풍 오마이스로 인한 소하천 피해 복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북 포항시 자오천의 경우 복구 공정률이 80%다. 복구계획을 확정하고 사전 행정절차를 거쳐 착공한 탓에 피해발생 3년 4개월이 지나야 복구가 끝난다.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피해복구는 기간이 조금 짧아졌다. 행정절차 완료 이전에 복구공사를 착공한 덕분에 예상 복구기간이 2년 10개월로 과거보다 6개월 단축됐다. 지난해 6~7월 집중호우 피해복구 기간은 이보다 좀 더 줄어든 2년 6개월로 예상된다. 피해발생 직후 지방비를 우선 투입해 설계용역을 발주한 덕분에 복구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미 설계 진도율이 50%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지자체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산사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주민 상당수가 여전히 임시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예천군 전체 피해복구율은 여전히 50%대에 머물러 있다. 산사태를 막을 사방댐도 계획된 9곳 중 1곳만 완성됐다. 복구가 마무리되기 전에 또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재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피해발생지역은 물론 2021년 피해 발생지역 복구도 아직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집중호우에 대비해야 하는 셈이다.

다만 재해를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인명피해만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 최근 정부와 지자체의 자구노력은 의미가 있다. 행안부는 경북 5725곳, 충남 5897곳 등 전국의 모든 산사태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대피소를 지정하고 대피계획을 수립했다. 침수우려 지하차도에 대해서는 공무원·경찰·주민 등으로 구성된 ‘4인 담당자’를 지정해 통제·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재난 취약계층의 사전대피를 지원할 대피도우미를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경북도는 마을별 주민대피 대응체계인 마을순찰대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전북 군산시 나운3동 행정복지센터가 최근 발족한 ‘안전우산 네트워크’도 비슷한 마을자치형 대응체계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재난 발생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인명피해만큼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주민들 스스로 비상대응체계를 갖춰 재난 발생 전에 신속히 대피가 이뤄질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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