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한 북러, 서방과 대립각 키워
포괄적 전략동반자협정으로 반서방 연대 … 군사협력 통해 미 패권주의 균열 노려
19일 새벽 24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약 21시간 동안 이어진 일정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한 단계 높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이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 뒤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뒤 “(북러가) 동맹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러시아를 ‘가장 정직한 친구이자 동맹’으로, 푸틴 대통령을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부르며 회담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오늘 서명한 포괄적 동반자 협정은 무엇보다도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지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상호지원’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북한과 군사협력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뜻은 분명히 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오늘 서명한 협정과 연계해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새 협정 내에서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를 새로운 질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진정 획기적인 문건”이라며 “러북간 장기적 관계를 심화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목표 및 지침들이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위원장도 “두 나라 관계는 정치와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호상협력 확대로서 두 나라의 진보와 인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보다 훌륭한 전망적 궤도에 올라서게 됐다”고 호응했다.
비록 세부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북러간 군사협력을 비롯한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무기 등 군사적 지원이 절실하고, 유엔 제재 등으로 고립돼 있는 북한은 러시아를 통한 에너지와 식량 등 다양한 지원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최근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서방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상황에서 북러가 상호지원을 약속한 것은 언제든 북한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만든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북러 협정을 설명하면서 최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러시아 영토 타격을 위한 장거리 무기 시스템과 F-16 전투기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방이 나토와 주요 7개국(G7), 스위스 우크라이나 평화회의 등을 잇달아 개최하며 대러 진영을 강화한 가운데 러시아와 북한도 반서방 결속을 다진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과 러시아 모두 받고 있는 각종 제재에 대한 강한 불만도 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정치, 경제 패권 유지를 목적으로 늘려온 수단인 제재에 맞설 것”이라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주도한 무기한 대북 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 회담한 지 한 달 만에 이번에 북한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며 협력 수위를 한층 끌어올려 북중러를 중심으로 향후 미국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도도 엿보였다. 이번 방북 기간에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그 위성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것도 이런 의미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북중러 밀착 뿐만 아니라 반서방 연대를 위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도 모색하고 있다. 북한 방문을 마친 뒤 곧바로 베트남 하노이로 날아가 새로운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 난단에 게재한 기고에서 베트남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균형 잡힌’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은 러시아와 중국 등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 가입에 관심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