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원구성 ‘딜레마’ 지켜보는 대통령실 ‘속앓이’
법사위 말고도 지킬 상임위 많은데
4년 전 ‘보이콧→재배분’ 기대 난망
여소야대 심화, 임박한 선거도 없어
국회에서 원 구성을 놓고 여야가 막판 줄다리기를 벌이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대통령실의 고심도 깊어가고 있다. 여당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포기해도, 법사위에 매달리다 다른 상임위원회를 모두 잃어도 국정운영에 타격을 입게 되는 딜레마에 빠졌다.
대통령실은 원구성 협상은 여당의 선택 문제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0일 “원구성과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여당이 선택할 일이라는 게 뚜렷한 입장”이라며 “대통령실은 스치듯 의견을 내는 것도 개입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만큼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해지는 기류는 잠잠하지 않다. 야당의 입법공세에 맞서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법사위를 사수해야 한다는 시각, 국정운영의 책임이 있는 만큼 법사위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상임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시각이 얽혀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국회 법사위는 김건희 여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충돌하는 전장이 될 전망이다. 여야 모두 쉽게 양보할 수 없다. 윤 대통령으로서도 초연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러다보니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법사위를 받지 못할 바에는 원구성 자체를 거부(보이콧)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나오기도 하는 중이다.
21대 국회 출범 당시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법사위원장 차지에 항의하며 원구성 협상을 거부했다. 당시 민주당은 전체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가 이듬해 7개를 국민의힘에 넘기는 재분배에 합의한 바 있다.
문제는 이번 원구성은 4년 전과 환경이 판이하다는 점이다.
먼저 국민의힘은 21대 국회 때 야당이었지만 이번엔 여당이다. 국회에서 정부에 대한 야당의 공세를 방어해야 하는 처지다. ‘방패’ 역할을 할 상임위원장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특히 정보위·국방위·외교통일위 등 안보와 직결되는 상임위들까지 야당에 넘어갈 경우 후과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야당 때는 법사위 하나만으로도 여당 공격이 가능했지만 우리가 여당이 된 이상 처지가 다르다”며 “거대야당의 공세를 받아내며 국정운영을 하려면 상임위원장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민감한 안보사항으로 가득한 부처를 관할하는 상임위원장이 민주당에 넘어가도록 둔다는 것은 정부에 치명적인 공격거리를 스스로 갖다 바치는 꼴”이라며 “외교·국방·안보 기조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21대 국회 때 성사됐던 상임위 재분배도 이번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2021년 하반기 상임위 재분배는 민주당에 대한 여론악화 및 이듬해 재보궐선거 패배가 미친 영향이 컸다는 게 중론이다.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부산시장을 모두 잃었다.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소장은 “21대 국회 때는 불리한 의회지형을 보정해 줄 선거가 이듬해 있었지만 이번엔 2026년 지방선거 때까지 야당 독주를 심판할 계기를 찾기 어렵다”며 “정부여당이 명분도 실리도 찾기 어려운 싸움에서 외통수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