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3년차 ‘친윤 꼬리표’ 고사하는 여당
나경원 “특정계파에 줄 안 서” … 김재섭 “친윤 지원 안 받아”
지난해 전대 서로 “내가 친윤” … 윤 대통령 ‘지지도 추락’ 영향
내달 23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유력주자로 꼽히는 나경원 의원은 19일 SNS에서 “우리 당은 스스로 친윤, 비윤, 반윤 또는 친한과 반한, 이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했으면 한다”며 “제가 특정 계파에 줄 서거나 편승하는 정치를 했다면, 5선 수도권 정치인의 자리에 결코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친윤이 나 의원을 ‘한동훈 대항마’로 삼아 측면 지원할 것이라는 당내 일각의 관측을 부인한 것이다. 나 의원은 지난해 전당대회에 출마하려했지만 친윤의 ‘연판장 공세’에 막혀 뜻을 접어야했다. 친윤이 이번에는 도와줄 듯한 분위기지만, 본인이 거부한 것이다.
당권 도전을 고심하다가 20일 불출마를 선언한 김재섭 의원은 지난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친윤 후보’ 가능성을 제기한 언론 보도에 대해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보도였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친윤이라는 이름으로 당을 망친 사람들을 개혁하는 게 제 정치적 소임이지 그분들의 지원을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확인했다. 유력 당권주자로 꼽히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이미 비윤 위상을 굳혔다. 이 때문에 친윤에서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은 허상”이라며 견제에 나서고 있다.
전당대회를 한 달여 앞둔 국민의힘의 최근 풍경은 지난해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유력주자들은 서로 “내가 친윤”이라고 주장했다. 김기현 의원은 윤핵관 장제원 의원과 손잡고 ‘김장연대’를 과시했다. 친윤은 조직적으로 김 의원을 밀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출신인 안철수 의원도 “지금까지 ‘윤안(윤석열-안철수)연대’로 여기까지 왔다” “윤 대통령과는 최상의 조합”이라며 자신이 ‘친윤 후보’임을 강조했다. 당시 당권주자들은 왜 그랬을까. 윤 대통령 임기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치러진 지난해 전당대회에서는 ‘친윤 꼬리표’가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부진했지만, 당원들은 여전히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친윤 대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내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주자들이 ‘친윤 꼬리표’를 고사하는 모습은, 윤 대통령의 여권 내 위상 변화를 실감케한다는 해석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추락하고, 보수층·당원들의 기대가 식으면서 ‘친윤 꼬리표’가 붙으면 당권 경쟁에서 유리하기는커녕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대통령실이 지난해와 달리 올해 전당대회에 개입하지 않는 건 ‘친윤 당권’을 굳이 고집하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친윤 당권’을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다. 윤 대통령 임기가 이제 겨우 3년차에 접어든 시점에 벌써부터 당권주자들이 ‘친윤 꼬리표’를 고사하는 모습이 연출되자 향후 당정관계가 심상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과 친윤에서는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무리한 차별화를 꾀하는 순간 보수층과 당원들로부터 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표직 이후의 대선 도전 꿈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압박한다.
친윤 강승규 의원은 지난 17일 BBS 라디오 ‘함인경의 아침저널’에서 “대통령과 당 대표가 갈등을 빚게 되면 정부·여당이 망하는 길이다. 그런 당 대표를 뽑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과 친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달 선출될 대표가 ‘당정일체’에 무게를 둘지는 미지수다. 차기 대선이나 지방선거 도전을 꿈꾸는 새 대표 입장에서는 국정지지도가 추락한 대통령과 차별화해야만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