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고령화 청년층 진입

독일 ‘숙련인력’ 중요성 구현해 건설장인 육성·활용

2024-06-21 13:00:23 게재

‘근로자의 마지막 정거장’에서 ‘마이스터’로 … 고용안정·고임금 존경의 대상, 품질·안전·생산성의 원천

우리나라 건설기능인의 고령화와 청년층 진입 기피에 대한 해법으로 독일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면적 이유 중 하나는 일반 실업률에 비해 청년층의 실업률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비교가 어렵지만 2024년 3월 기준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6% 대 6.5%로 2.5배인데 비해, 독일의 경우 5.9% 대 5.8%로 오히려 청년실업률이 더 낮았다. 그 비결로서 현장연계 교육훈련에 따른 현장성 제고, 마이스터로 대표되는 직업전망의 제시, 양호한 근로조건 등을 꼽을 수 있다.

보다 심층적 이유는 독일도 과거에 ‘노동자로서 마지막 정거장’ 또는 저임금의 외국인에 의한 내국인 대체 등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이상적인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고용불안과 겨울철의 실업, 낮은 소득, 고령화 등이 심각했다. 하지만 이젠 정규직으로 고품질의 생산물을 직접 시공하고 있다. 과연 그 작동 메커니즘은 무엇이고, 우리 현장에 적용 가능할까?

독일 건설업은 겨울철 해고 금지와 고용불안 탈출, 임금 하한선 규제와 내국인 일자리 확보, 낙찰자 선정 시 ‘사람’ 반영과 정규직 고용, 기능인 출신의 관리자 임명, 초기업단위의 육성체계 구축 등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독일 건설노동자도 날 때부터 마이스터는 아니었다. 우리도 노력하면 따라 잡을 수 있다.

#. 2001년 80대의 독일 건설업 마이스터는 “1950년대 초까지 건설노동자가 ‘근로자의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불렸어요. 오늘날의 마이스터가 되는 데 50년이 걸렸는데 원동력은 교육훈련이었지요”라고 말했다.

#. 2009년 건설훈련센터에서 만난 학생에게 건설 직종을 택한 이유와 장래 희망에 대해 묻자, “아버지도 마이스터인데, 그 일을 보면서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도 어서 경력을 쌓아서 실력 있는 마이스터가 돼 나의 건설업체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 2006년 건설업체 사장은 “우리 경쟁력의 원천은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우수한 숙련인력”이라며 “고가의 장비라도 돈만 주면 살 수 있지만 누가 운전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천지차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건설훈련센터 훈련생의 도로포장 실습 | 2015년 독일 출장 시 방문했던 건설훈련센터의 도로 분야 마이스터는 “도로 아래 토양과 구조를 고려해 기초를 잘 다지면 그 위에 1000년을 버틸 수 있는 중세도시의 돌길도 만들 수 있다”고 자랑했다. 사진 건설고용컨설팅 제공

‘근로자의 마지막 정거장’이라 불리던 시기의 가장 큰 고통은 겨울철마다 반복되는 실업이었다. 독일은 1956년 ‘악천후수당제도’의 도입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11월부터 3월까지 건설현장에서 해고를 금지시키되 노동비용은 노·사·정이 분담했다. 정부는 실업급여 수준의 ‘악천후 수당’을 고용보험에서 지급했다. 2006년 조업단축수당으로 개편되면서 주문 감소에 따른 생산중단에도 지원해 고용안정의 기반이 됐다.

◆겨울철 해고 금지, 실업에서 탈출 = 1993년에 유럽연합(EU)가 통합되면서 동유럽의 저임금 근로자가 독일로 유입됐다. 1996년에 건설노조는 ‘내국인 외국인 동일임금 지급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파업을 감행해 성공했다. 6단계의 단체협약 임금 중 하위 2단계를 하한선으로 삼는 건설업 최저임금제가 1997년에 도입됐고 구속력의 확장을 통해 모든 건설공사에 적용됐다. 그 후 ‘같은 임금을 줄 바에는 내국인을 우선 고용’하는 관행과 적정공사비(노무비 포함)의 확보 여건이 조성됐다.

나아가 건설업체의 핵심적인 시공능력이 ‘사람’이라는 상식을 구현했다. 낙찰자를 선정할 때 시공실적도 확인하지만 시공에 참여했던 기술인 및 기능인의 보유 여부를 심사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그러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기업)는 퇴출됐고 실체 건설업체는 연간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80% 이상의 기능인이 정규직으로 고용됐다.

2000년에 독일에서 사회학 석사를 취득하고 2009년부터 독일건설농업환경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은숙 전임자는 2019년에 “정규직의 의미가 동일 사용자 내지는 사업장에서 근로기간의 제한이 없이 전일 근로에 종사하는 것이라면, 건설업 현장 기능직은 대부분이 정규직”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인력을 보유한 전문건설업체는 수주한 공사를 직접 시공한다.

◆임금 및 직위 직업전망, 청년층 진입 촉진 = 독일 건설기능인의 단체협약 임금은 6단계인데 자격·훈련·경력이 쌓일수록 높아진다. 현장관리자의 역할은 대학 졸업자가 아닌 숙련인력이 담당한다. 정점에 있는 마이스터는 최소 5년의 현장경력과 자격시험을 거쳐 도달할 수 있다. 마이스터는 관리자 교육자 창업가 등의 특권을 누린다.

건설업체 사장은 “현장소장은 기능인 출신인데 직접 일을 해봤기 때문에 관리도 더 잘 한다”고 말한다. 직업학교 교장은 “교사로서 마이스터를 선호하는데 실제 일을 해 본 사람이어야 이론도 더 잘 가르친다”며 “이들은 교육학까지 배운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41개 전문 업종의 유일한 건설업체 설립요건은 ‘마이스터 자격증’이다. 이 특권은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자 ‘축적된 노하우의 환류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또한 명확한 직업전망으로서 청년층의 진입과 성장을 촉진한다.

◆현장성 높은 교육훈련, 사업주 참여 촉진 = 독일에서는 ‘건설업종 차원’에서 숙련인력 육성체계를 운영한다. 각 업종의 특성과 노사의 요구를 자격·훈련 직종 개설과 운영에 신속히 반영한다. 2009년에 건설훈련센터 마이스터는 “최근 건설업체의 요청으로 기존 페인트 직종에서 락커 직종이 분리됐는데 그 쓰임새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직업학교 학생은 3년 동안 이론(학교), 실기(훈련센터), 실습(현장) 등으로 구성된 이원화 교육체제(Dual system)을 통해 현장성 높은 교육훈련을 받는다.<‘건설업 고령화 청년층 진입’ 연재기사 참조>

2022년 현재 직업교육훈련생 1인당 3만9000유로(5800만원), 연간 4만300명에게 약 4억3640만유로(6500억원)를 지원했다. 건설기능인을 육성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모든 건설사업주가 분담한다. 훈련생을 보유하든 안하든 임금의 1.9%를 건설업 사회복지기금(SOKA-BAU)에 납부해 초기업단위에서 운영한다. 현장성 높은 청년기능인의 배출은 교육훈련에 대한 사업주의 참여를 촉진한다.

2009년 독일 건설훈련센터에서 심규범 대표가 장은숙 독일건설농업환경노조 전임자 통역으로 훈련생들과 건설 직종을 택한 이유와 장래 희망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적정임금제, 기능등급제, 특성화고 현장연계 =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임금 하한선을 규제하는 적정임금제 도입과 기능등급제의 활용방안 법제화, 그리고 특성화고의 현장연계 강화 등이 독일의 메커니즘을 우리 현장에 구현할 수 있는 해법들이다.

노사 당사자와 범정부 차원의 유기적 협조가 이뤄진다면, ‘노가다’가 ‘존경받는 건설장인’으로 거듭날 내일을 앞당길 수 있다.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전 건설근로자공제회 센터장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