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극한호우

'대기의 강', 동아시아와 미국 캘리포니아는 다르다

2024-06-24 13:00:02 게재

온난화로 수증기 대량 수송 증가, 기록적 폭우 유발

각종 기상이변 초래하지만 지구 물 순환에 큰 역할

남부는 장마에 수도권은 폭염. 상반된 날씨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올여름 장마 피해 대비에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극한호우를 퍼붓는 ‘대기의 강’이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상황. 성질이 다른 두 기단 사이에 땅의 강처럼 하늘에도 기체 상태의 강(수증기)이 흐르면서 장마전선에 쉴 새 없이 수증기를 공급하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비가 내릴 수 있다. 기후변화로 강해지는 대기의 강에 대해 살펴봤다.

‘대기의 강’. 최근 기후변화와 기록적인 폭우 등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일대에 이틀 만에 연평균 강수량의 절반에 가까운 비가 내리면서 또다시 대기의 강이 언급되기도 했다.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대기의 강도 강화된다는 얘기는 이미 과학적으로 정설이 된 분위기다.

그렇다면 과연 대기의 강이란 무엇일까.

20일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은 “대기의 강의 기본적인 개념은 수증기 수송”이라며 “미국에서 해당 정의가 시작됐지만 몬순지대인 동아시아 지역에 여름철 수증기가 대량으로 유입되는 현상은 예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대기의 강은 대기 중에 고도로 농축된 수증기로 이뤄진 ‘길고 좁은 띠’다. 동그랗게 떨어지는 태풍과는 달리 가늘고 긴 형태로 올라온다. 액체는 아니지만 하늘에 흐르는 강인 셈이다. 대기의 강이 산이나 지역 대기 역학에 부딪혀 강제로 상승할 경우 강이 운반하는 수분이 냉각되고 응결돼 폭우나 폭설을 유발한다.

◆여름철 강수 현상과 관련 있어 = 대기의 강은 지구 대기의 길고 좁은 수증기 지역으로 열대 지방에서 중위도 지방으로 열과 습기를 운반한다. 미국기상학회보에 소개된 ‘대기의 강 정의: 기상학 용어집이 논쟁 해결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논문에 따르면 하늘에 흐르는 이 기체 상태 강의 운반 속도는 아마존 강 유속의 2배 이상으로 굉장히 빠르다.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 현상의 상당 부분은 대기의 강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기후변화 영향으로 대기의 강이 더 많은 강수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잇달아 나온다.

“기후변화와 대기의 강을 연관해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죠. 지표상의 기온이 상승하니 강 등의 물이 증발해서 공기 중으로 올라오고 대기 중에 수증기량이 늘어나게 됩니다. 통상 1℃ 기온이 상승하면 수증기량은 7% 정도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경향을 따라간다고 하면 우리나라 쪽으로 대기의 강이 영향을 미칠 때 예전보다 더 많은 강수량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죠.”

변 팀장의 설명이다. 올여름 장마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일 제주도에서 첫 장맛비가 내렸다. 이후 20일 제주 서귀포에선 단 한 시간 만에 5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하루 강수량은 200mm를 넘기는 등 80년에 한 번 나올 확률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장마가 시작된 제주에서는 곳곳에서 폭우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장마 이틀째인 2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에 비구름이 걸려 있다.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라니냐로 전환기, 정확한 예측 어려워 = 최근 기후변화 영향으로 짧은 시간 한꺼번에 쏟아지는 ‘극한 호우’는 물론 정체전선이 어디에 오래 머무르느냐에 지역별 강수량 편차가 심해지고 있다. 때문에 제주와 같은 상황이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기상청의 ‘6~8월 3개월 전망’에 따르면, 6월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할 확률은 50%다. 7월과 8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각각 40%다. 7월과 8월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수가 평년(여름철 평균 2.5개)과 비슷하거나 적을 확률이 각각 40%다.

게다가 라니냐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 폭염연구센터장은 6월 ‘전지구 폭염 현황 및 2024년 여름 폭염 전망’을 주제로 한 언론인 기상강좌에서 “겨울철 엘니뇨에서 여름철 라니냐로 전환할 경우 7월 동아시아 지역 강수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전지구 온도 상승과 극한 기후를 일으킨 엘니뇨 현상이 소멸되고 올해 말 라니냐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WMO 글로벌 장기 예측 생산 센터에 따르면 라니냐 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7~9월 60%로 증가한다. 8~11월에는 70%로 상승한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엘니뇨가 재발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전환기에 장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이미 상당히 상승한 해수 온도로 인해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8~14일 동해 수온은 17.9℃로 평년보다 1.6℃ 높았다. 남해 역시 18.8℃로 평년보다 1.0℃ 상승했다.

2월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에서 망가진 도로 위로 홍수가 쏟아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세계 수분 수송 90%를 담당 = 대기의 강은 양면성이 있다. 미국 기상학 학술지 ‘월간 날씨 리뷰(Monthly weather review)’에 실린 논문 ‘대기 하천의 수분 플럭스에 대해 제안된 알고리즘’에 따르면 전세계 수분 수송 90%를 대기의 강이 담당한다. 지구 물 순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지역적으로 담수 보충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각종 기상 이변을 초래하기도 한다. 대기의 강 개념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전통적으로 고기압이 강해 비가 잘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적도 지방에서 저기압이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올라오면서 수증기를 함께 끌고 와 갑작스럽게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일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태평양이 수분 저장고 역할을 하고 산맥이 장벽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해안 산맥 서쪽과 시에라네바다산맥에 많은 비와 눈이 내리게 된다.

대기의 강은 길고 좁다고 설명하지만 말처럼 작은 규모가 아니다. 길이가 2000㎞ 이상이고 너비도 수백㎞에 이른다. 미국과 서유럽의 서쪽 해안 지역에 상륙해 종종 대홍수를 일으킬 만큼 규모가 대단하다.

변 팀장은 “동아시아와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기의 강은 다른 특성이 있다”며 “동아시아의 경우 봄이나 여름철에 대기의 강 빈도가 높은 반면 다른 지역은 겨울에 많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에는 여름철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대기의 강이 자주 출현하는 편이다. 6월에는 중국 동남부 지역과 일본 남쪽 해상에서 대기의 강 빈도가 높아진다. 7월로 넘어가면서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쪽 확장과 더불어 한반도가 대기의 강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국제학술지 ‘기후역학’의 논문 ‘동아시아 대기 하천의 장기 추세’에 따르면 동아시아 남부를 중심으로 대기의 강 활동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강수량이 증가하고 폭우가 내렸다. 반면 동아시아 북부에서 대기의 강 관련 강수량이 크게 감소했다.

이러한 변화의 주요 원인은 대기의 강 축을 따라 더 따뜻하고 습한 환경이 조성되고 지구온난화 등으로 대기의 강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는 1951~2015년까지 동아시아 지역의 대기의 강 장기 추세를 분석한 결과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엘니뇨와 라니냐 = 엘니뇨는 열대 동태평양 감시구역 해수면 온도가 3개월 이동평균으로 평년보다 0.5℃ 이상 높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유지되면 발생한 것으로 본다.

라니냐는 엘니뇨와 반대로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은 상태다. 엘니뇨와 라니냐 자체는 이상기후가 아닌 지구 열순환에 의한 자연적 현상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가속화됨에 따라 발생 주기와 강수·기온 유형이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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