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 급락에 투자펀드 잇단 부실…금융사·투자자 손실

2024-06-24 13:00:03 게재

미 투자호텔 헐값 매각 … 하나증권·하나은행, 투자자와 사적화해

KB증권도 보상 검토 … 펀드가 투자한 유럽 부동산에서도 디폴트

미국과 유럽의 상업용(CRE)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들 부동산에 투자한 펀드들의 손실이 현실화되고 있다. 사모펀드를 판매한 일부 금융회사들은 주요 고객인 법인·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을 돌려주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투자 펀드들의 손실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이달 18일 미국 뉴욕시 맨해튼 미드타운 모습.AFP· 연합뉴스

24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KB증권과 하나증권·하나은행 등은 글로벌원자산운용이 조성한 해외 부동산 투자 사모펀드를 2021년부터 각각 200억~300억원 가량 판매했다. 해당 사모펀드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호텔 ‘마가리타빌 리조트 타임스스퀘어’에 메자닌 대출을 해줬으며, KB증권 등이 법인과 개인투자자들에게 펀드를 팔았다. 메자닌 대출은 선순위 대출과 달리 건물 매각시 중·순위여서 수익률은 높지만 건물 가격이 하락하면 손실 위험이 크다.

마가리타빌은 소유주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발생에 따라 경매에 넘어갔고 1억5000만달러에 낙찰됐다. 펀드가 투자한 4억4000만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에 매각되면서 전액 손실을 입게 됐다. 선순위 투자자들도 일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이 손실에 따른 판매사의 책임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하나증권과 하나은행은 미상환 원금의 90%를 사적화해 방법으로 돌려줬다. 판매사 자금으로 투자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진 만큼, 하나증권과 하나은행은 이번 사모펀드 사태로 각각 200억원 가량의 손실을 입게 됐다.

KB증권은 보증인 등을 통해 투자금 회수를 진행 중이어서 아직 손실이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KB증권은 일단 투자자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 차원에서 원금의 일부를 선지급했다. 손실이 확정될 경우 보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금융회사, 직접투자·판매 손실 이중 부담 = 해외부동산펀드의 투자 손실이 커질수록 펀드를 판매한 금융회사들의 부담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해외부동산 직접 투자에 따른 손실 우려도 크다. 지난해말 기준 금융회사들의 해외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57조6000억원에 달한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부실로 인해 직접 투자와 펀드 판매에 따른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부동산 펀드들이 투자한 자산의 디폴트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지역에 투자한 부동산에서도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 한투리얼에셋운용은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파생형)’가 현지에서 빌린 대출 원금 상환 불가로 인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해당 펀드는 벨기에 브뤼셀 소재 정부기관이 임차하는 오피스 건물에 투자해 배당금과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을 예상했지만,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채무불이행이 발생했다. 지난해말 자산 매각에 착수했지만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매수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펀드의 설정액은 900억원 가량이며, 만기를 5년 연장하는 방식으로 당장의 손실은 피했다.

기한이익상실은 채무자가 이자 또는 원금을 갚지 못하거나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담보 가치가 부족할 경우 채권자가 만기 전 대출 원리금 회수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이달초 이지스자산운용의 독일 트리아논 부동산 펀드도 ‘이지스 글로벌 부동산 투자신탁 229호’도 대출 유보 계약이 종료되면서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전체 해외 부동산 펀드 260개 중 175개(67%)가 손실을 기록 중이다. 이들 펀드들은 만기도래에 따른 손실 확정을 피하기 위해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이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상업용 부동산 문제는 이제 시작” = 하지만 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언제 정상화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 PIMCO는 이달 중순 “상업용 부동산 문제가 중소형은행을 넘어 대형은행 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PIMCO의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팀을 이끌고 있는 존 머레이는 “진짜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며 “다만 2008년 금융위기때의 시스템 리스크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PIMCO는 시장에 알려진 것과 달리 미국의 대형은행들도 상업용부동산의 어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미 추가적인 손실확대를 회피하기 위해서 부동산 대출자산을 매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은행에 가려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사모부채펀드(private debt fund)가 2000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2021년 부동산 가격 폭등시 설정된 것으로, 특히 현재 고금리 환경에서 올해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사모부채펀드의 차환 성공 여부가 향후 상업용 부동산 문제의 행방을 살펴볼 수 있는 첫 번째 결정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이달 초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미국 6개 지역은행에 대해 신용등급 강등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6개 지역은행이 보유한 대출의 상당부분이 상업용부동산에 집중돼 있어서 고금리 상황에서 은행의 자산건전성과 수익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신용등급 강등의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6개 은행은 퍼스트 머천츠, FNB, 풀턴 파이낸셜, 올드 내셔널 뱅코프, 피팩 글래드스턴 파이낸셜, 워페드(WaFd) 등이다. 무디스는 피팩 글래드스턴의 경우 상업용부동산 대출이 은행의 보통주자본의 479% 수준이며, 올드 내셔널은 279%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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