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가 연구자 꿈 앗아가”

2024-06-24 13:00:02 게재

신촌 대학가 97가구 100억대 피해

불법주방·원룸전세, 대부분 청년층

“해외에서 공부하고 들어와 훌륭한 연구자로 나라에 이바지하겠다는 꿈을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한 대학생 전세 피해자의 하소연이다.

‘신촌·구로·병점 100억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유플렉스 앞에서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한 건축업자 건물주로부터 총 7채, 97명의 세입자가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견에서 “피해자 대부분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주택을 마련하려던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청년들”이라며 “지난해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피해 주택 7채 가운데 6채가 다가구주택으로 4채는 불법 건축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가구주택과 불법 건축물은 전세사기특별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피해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피해자 대부분은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 5채 빌라의 세입자들이다. 구로 오류동과 경기 화성시 병점동에도 피해자가 포함돼 있다.

대책위는 전세사기 피해자 평균 연령대가 26.4세로 20세 피해자도 있다고 밝혔다. 84명을 대상으로 한 자체 조사에서는 사회초년생·직장인이 58명(69%)이었고 대학생이 19명(22.6%), 자영업자와 기타가 7명(8.4%)을 차지했다.

연세대에 인접한 한 피해 건물은 1~2층이 근린생활시설이었고, 3~5층은 다중주택이었다.

근린생활시설은 건축법상 사업용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주거 전세로 임대했다. 다중주택의 경우도 건축법상 취사가 허용되지 않지만 이 건물은 주방을 설치해 이 또한 전세로 임대했다.

해당 건물 세입자들은 비싼 월세를 피해 전세대출을 받아 5~6평의 원룸에서 생활했다.

보증금 1억25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이 모씨는 피해사실을 안 것은 지난해 4월이라고 했다. 이씨는 집주인 최씨의 “해결하겠다”는 말만 믿었다. 하지만 피해주택이 7채나 되고 모두 경매에 넘어갔다는 걸 알고 망연자실했다. 이씨는 “해당 건축물이 불법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또 다른 피해자 이 모씨는 학교 기숙사가 없어 월세를 구하려다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하다’는 공인중개사 권유에 계약하게 됐다. 중개인 A씨는 청년전세대출 계약도 도왔고 선순위인데다 건물 시세가 60억원에 가깝기 때문에 잘못돼도 보증금을 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안심 시켰다. 하지만 이씨는 1년이 지나 경매개시 통지서를 받았다. 대책위에 따르면 A씨가 거래를 중개한 피해자는 최소 62명에 이른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오래된 대학가의 경우 다가구, 다중주택, 원룸 불법건축물 등 온갖 것들이 섞여 쪽방촌처럼 조성되어 있다”며 “저렴하지도 않고 열악한 집들 사이에 전세사기가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 16명은 해결을 기다리다 지난 2월 건물주 최씨를 사기 혐의로, 중개인 A씨를 사기방조 혐의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지난달 최씨를 검찰로 송치했지만 A씨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 ‘혐의없음’ 불송치 결정했다.

이에 또 다른 피해자 33명은 이들을 같은 혐의로 지난달 경찰에 추가 고소했다. 구로와 병점의 세입자들도 고소에 합세했다.

하지만 최씨는 올해 2월부터 또 다른 건물을 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세입자들에게 “자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계속 설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개인 A씨도 건물주와의 유착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A씨는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2017년쯤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근저당은 계속 감액돼 기존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반환받아 문제없이 나갔다”며 “학생들 대부분도 계약할 때 부모님들과 함께 와 계약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건물주에 사업적 문제가 발생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 위원장은 “인생계획을 펼쳐나가는 시기에 억대 빚을 짊어지게 된 것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라며 “경매유예를 제대로 시행해야 하고 지자체 정부 국회 그리고 대학까지 이 문제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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