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까, 버틸까…전대 이후 갈림길 마주할 윤 대통령
역대 대통령 임기 말 탈당 수순 … ‘한동훈’ 탈당 변수 부각
친한계 30여명 ‘거부권 무력화’ 가능 … 탈당 내몰릴 수도
이명박-박근혜 ‘불편한 동거’ 전례 … 끝까지 버틸 가능성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 출마한 윤상현 의원은 25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대표가 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탈당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두 분(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관계는 바닥”이라고 강조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달 SNS를 통해 “여당이 대통령을 보호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하면 윤 대통령은 중대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탈당 가능성을 거론했다. 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여권에서 임기 3년차 윤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이 연신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과연 역대 대통령처럼 탈당의 운명을 걷게 될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선출된 대통령 7명 가운데 4명(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임기 중 탈당했다. 1명(박근혜)은 출당 조치됐다. 임기 마칠 때까지 당적을 유지한 건 이명박·문재인 대통령뿐이다.
윤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건 한 전 위원장이 유력 당권주자로 떠오른 것과 무관치 않다. 한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시절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 △이종섭 전 국방장관 출국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거취를 놓고 윤 대통령과 신경전을 벌였다.
최근에는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제3자 특검법)’을 내놓았다.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과는 다르지만, 윤 대통령을 겨냥한 법안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충돌이 위험 수위로 접어들었다는 해석을 낳았다.
만약 한 전 위원장이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다면 당장 특검법 대응을 놓고 당정 사이에 이견이 예상된다. 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대응하겠지만, ‘한동훈 체제’가 이끄는 여당이 일사분란하게 거부권에 힘을 보탤지는 불투명하다. 한 전 위원장이 야당과 특검법 협상에 나설 수 있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야당안에 동의할 가능성도 있다.
26일 현재 한동훈 캠프에는 20명을 넘는 의원들이 힘을 보탠 것으로 확인됐다. 3선 송석준 의원부터 재선 박정하·김형동 의원, 초선 주진우 의원 등이 자신의 보좌진을 캠프에 파견했다. 최성일(박정하), 오효택(김형동), 이시우(주진우) 보좌관 등이 캠프 주축을 맡고 있다.
캠프 관계자는 26일 “지지 의원이 계속 늘고 있다. 30명을 넘길 것 같다”고 전했다. 친한계 의원이 30여명에 달한다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여당 의원 108명 중 8명만 이탈해도 거부권은 무력화된다.
만약 한 전 위원장이 대표가 된 뒤 특검법 정국에서 윤 대통령과 이견을 보일 경우 윤 대통령으로선 ‘결단’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선 4명의 전직 대통령처럼 탈당을 결행할 수 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탈당을 결행하기에 남은 임기가 너무 길다는 것. 역대 대통령의 탈당은 전부 임기 말에 이뤄졌다.
윤 대통령이 탈당하면 남은 3년 동안 여당의 지원사격도 없이 국회에 맞서야 한다. ‘국정 마비 사태’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이 탈당을 거부한 채 한 전 위원장과 ‘불편한 동거’를 감내할 수도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례’도 있다. 이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11년 12월 여당에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다. 박 비대위원장은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추진했다. 당명을 바꿨고 정책 방향도 반대로 틀었다. 총선 공천에서도 친이를 내쫓았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끝까지 버텼고, 당적을 보유한 채 퇴임했다. 윤 대통령도 ‘한동훈 체제’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정권재창출을 위해 인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한 전 위원장이 아닌 다른 후보가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의 고민은 훨씬 가벼워질 수 있다. 원희룡 전 장관은 ‘당정 일체’를 외치는 친윤 주자다. 윤 대통령이 탈당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나경원 의원은 비윤으로 분류되지만, 특검법에는 반대한다. 윤 대통령과 당장 충돌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