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38년 만에 최저…원화 변동성 확대
일본은행 개입주의보…미 국채 대량 매도 우려
글로벌 외환시장·국내 금융시장에 큰 부담 작용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넘어서며 엔화 가치가 3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의 잇따른 구두개입에도 엔화 약세 속도가 예상보다 가파른 상황이다. 글로벌 외환시장에는 일본은행(BOJ)의 개입주의보가 발령됐다. 일본 정부가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 등 해외자산 매도와 일본은행의 공격적 긴축조치를 추진한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물론 국내 융시장에도 큰 부담이 예상된다.
◆일본, 슈퍼 엔저에도 부진한 성장 = 27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전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대비 엔화는 160.81엔으로 전일대비 0.7% 하락했다.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 만에 최저치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돌파한 것은 지난 4월 29일 이후 두 번째다.
엔화 약세가 꺾이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미국과 일본 간 통화정책 차별화 때문으로 지목된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하 시점이 점점 늦어지는 가운데 일본은행의 긴축 전환속도 또한 상대적으로 더딘 속도를 보이면서 미일 간 통화정책 차별화 현상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 경제는 견조한 추세를 보이는 반면 일본 경제는 작년 하반기부터 슈퍼 엔저 효과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부진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벗어나는 분위기지만 성장률이 재차 둔화되면서 일본은행 입장에서 서둘러 긴축기조로 전환하기 어려운 여건이 조성됐다”며 “엔화 약세 심리를 기반으로 한 투기적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 슈퍼 엔저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적 외환시장 개입과 추가 긴축 전망 = 과도한 엔저 현상은 물가압력 확대, 소비심리 위축, 일본 정부의 부채 부담 확대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는 지난 4~5월과 같은 직접적인 외환시장개입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엔화 약세 심리를 진정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오는 7월 개최될 일본은행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금리인상 혹은 양적완화 규모 축소와 같은 추가 긴축조치 단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대외순자산 최대보유국인 일본의 외환보유고를 보면, 개입 여력은 충분해 보인다. 일본 정부 보유 외환보유고 상당 부분이 미국 국채다. 이에 미국 채권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미국 씨티 그룹은 일본 당국이 현재 2000억~3000억달러의 실탄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일본 당국이 보유 중인 달러화 등 외화를 팔고, 미국 재무부 채권을 비롯한 다른 나라 채권을 팔아 엔화를 매입할 수 있다.
◆채권금리 상승에 엔화 약세 악순환 = 하지만 미 국채를 대규모로 팔아치우는 것은 일본으로서도 부담이다. 일본이 환율 방어를 위해 미 국채를 매도하면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이로 인해 미국과 일본 간 금리차가 확대되면 엔화 약세 압력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하연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 재무부 환율보고서에서 일본은 1년 만에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되면서, 미국이 일본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부담”이라며 “엔화 안정을 위해서는 미 연준의 통화정책 스탠스 전환이나, 일본 실질임금 개선 확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화가치 하락 압력 가중 = 문제는 일본이 엔화흐름을 전환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엔화가치에 시장의 일본은행 통화정책 정상화 기대는 여전하다. 하지만 높은 물가 수준에도 △일본 가계 실질소득 감소 △정부 등 부채 부담에 일본은행은 통화정책 정상화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박 연구원은 “일본은행의 긴축전환 속도와 관련해 정책적 실기를 한 측면이 있어 7월 추가 긴축조치가 엔화 흐름을 전환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며 “이미 엔화의 취약성이 노출된 상황에서 투기세력의 엔화 약세 공격이 진정될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엔화불안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엔화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원화 가치 하락 압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엔화 약세에 최근 위안화도 약세를 용인하면서 동아시아통화가치도 동반 취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엔화 추가 약세시 원달러 환율의 1400원 안착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한편 27일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 원달러 환율은 전일대비 5.7원 오른 1394.4원에 장을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달러 강세와 일본 엔화 약세의 영향으로 상승했다. 간밤 미국 달러화 가치는 엔화 약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약 2개월 만의 최고치로 올라섰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