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자신’한다는 윤 대통령, 번번이 ‘낙제점’…이번 전대는?
윤 대통령, 굵직한 정무 판단은 ‘본인 뜻대로’ 경향
이준석 축출·김기현 대표·한동훈 비대위에 ‘윤심’
내달 전대 ‘친윤 대 반윤’ 구도, 벌써 후폭풍 ‘우려’
윤석열 대통령은 평소 국정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모 출신 인사는 26일 “윤 대통령은 다방면의 지식을 자신하지만, 특히 정무영역에서는 본인의 판단을 더욱 믿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정치 경험이 짧지만 정치에 자신감을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윤석열정부 들어 주요 정치적 대목마다 윤 대통령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준석 대표 축출 △김기현 대표체제 출범 △한동훈 비대위 출범 등 굵직한 사건은 ‘윤심’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윤심’이 엿보이는 이들 사건들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결론적으로 대부분 ‘낙제점’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국민의힘은 ‘이준석 축출’에 나섰다. 대선을 앞둔 2021년 전당대회에서 헌정사상 최초의 ‘30대·0선’ 대표로 당선되면서 대선 승리에 힘을 보탰던 이 대표였지만,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속을 태웠던 ‘괘씸죄’를 문책하는 분위기였다. 윤리위를 앞세워 이 대표를 당에서 쫓아냈다. ‘이준석 축출’은 성공했지만 여권은 이후 ‘수직적 당정관계’로 변질되면서 향후 총선 참패의 씨앗을 뿌린 꼴이 됐다. 이 대표는 이후 탈당해서 개혁신당 깃발을 들고 22대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해 3.8 전당대회도 실패한 정무적 판단 사례로 꼽힌다. 당초 여권 내에서는 이듬해 총선 승리를 위해 득표력이 있는 안철수 의원이나 나경원 전 의원에게 당권을 맡기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김기현 대표체제’를 고집했다. 안철수·나경원 등 유력 경쟁자들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온갖 무리수를 둔 덕분에 ‘김기현 대표체제’가 출범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여권에서는 대통령실이 사실상 주도한 3.8 전당대회를 “역대 최악의 전대”라고 비판한다.
지난해 말 ‘김기현 대표체제’가 무너진 뒤 여당은 총선을 치를 새 지도부를 고민했다. 여권에서는 정치 경험이 풍부하면서, 친윤 색채가 옅은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선호했다. 유승민 전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한동훈 비대위체제’가 출범했다. 정치를 전혀 해보지 않은 검사 출신 한 전 법무장관이 총선을 앞두고 여당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역시 ‘윤심’으로 해석됐다. 한 비대위원장은 총선 내내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만 강조하다가 총선 참패를 맛봐야했다. 물론 총선 참패의 주된 원인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에 있지만, ‘한동훈 비대위체제’를 강행한 선택도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실은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어떤 후보들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똑같은 대우를 할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절대 중립을 지킬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여권 누구도 이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윤심’을 읽은 친윤에서는 “한동훈은 절대 안된다”는 기류가 명백하다.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이 출마한 것도 심상찮게 보이는 대목이다. 친윤에서는 ‘원희룡·나경원 연대론’까지 띄우며 ‘한동훈 저지’에 나선 모습이다. 입으로는 중립을 외치지만 ‘윤심’의 호불호가 명확하게 드러난 상황이 된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7.23 전당대회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한동훈과 원희룡 누가 당선된다고 해도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친윤의 결사저지를 뚫고 한 전 위원장이 당선된다면 자신을 막아섰던 친윤·대통령실과 불협화음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 전 장관이 당선된다고 해도 ‘수직적 당정관계’에 다시 갇히면서 윤 대통령이 국정 반전 기회를 갖기 어려워질 것이다.
여권 인사는 26일 “(윤 대통령이) 주로 내리는 정무적 판단이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냐. 참모들의 의견을 더 들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