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저출생대책이 실효성 가지려면 먼저 해야 할 일

2024-06-28 13:00:01 게재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출생아수는 2015년 44만명에서 2023년 23만명으로 줄었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수 역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지고 50년 후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절반 이하로 감소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최초로 0~4세 인구가 북한보다 적어졌다고 한다. 2021년 기준 0~4세 인구는 우리나라가 165만명, 북한은 170만명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는 국가소멸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저출생 상황이 지속된다면 경제 사회 교육 안보 등 전 분야에 걸쳐 국가 시스템의 붕괴가 우려된다.

정부는 이러한 저출생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19일 대통령 주재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개최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저출생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는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등 3대 핵심분야에 지원을 집중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 과도한 경쟁 완화를 위한 공교육 내실화, 지방 균형발전 등 구조적 요인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한다.

또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해 저출생 사업 예산에 대한 사전심의권을 부여하는 등 강력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인구위기대응 특별회계’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론 진일보했지만 각론은 여전히 미흡

이번 저출생대책은 기존의 백화점식 대책에서 탈피해 선택과 집중을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은 양육에 중점을 둔 복지정책 위주였다. 저출생 대응 총예산 24조원 중 양육 분야에만 87%(21조원)가 투입됐고, 오히려 효과가 큰 일·가정 양립 분야에는 8.5%(2조원) 지원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다르다. 80% 이상을 일·가정 양립 분야에 집중했다.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은 선진 각국에서도 이미 효과가 입증됐다. 독일은 1994년 합계출산율이 1.24명으로 하락한 후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으로 전환해 2015년 이후 1.5명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재택근무(21.9%)를 강화하는 등 가족친화적인 직장문화를 조성해 1.6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특정 요일에만 근무하는 파트타임식 부분 육아휴직을 시행해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 지원에 중점을 둔 대책은 총론에서 종전보다 진일보했다. 또한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수요조사를 통해 정책과제를 발굴하고, 기존 자문위위원회에 불과하던 저출생 대응 조직을 부처로 키워 인구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과 강력한 추진력을 갖게 한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다소 아쉽고 미흡하다. 우선 재원확보 문제다. 특별회계 신설을 검토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재정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예산을 우선적으로 저출산 대응에 활용하겠다고 한다. 사업을 평가해 우선순위가 높은 저출생 대응 분야는 재정 투입을 늘리고, 그렇지 않은 부문은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구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걸맞게 획기적으로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학생수가 급감하고 있는 만큼 남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 관계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조속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저출생 추세 반전시킬 강력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저출생은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환경, 출산한 여성의 경력단절 등 불이익, 일자리, 긴 노동시간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장기간 누적된 결과다.

정부는 단기간에 출산율 지표를 높이기 위해 조급해 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주거·양육 부담 해소, 가정내 육아와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양성평등의 문화와 인식을 확산해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아야 한다. 출산의 페널티를 없애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구 비상사태다. 모쪼록 이번만큼은 추락하고 있는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도록 정부도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하길 바란다. 국회도 여야정협의체를 구성해 부족한 대책은 보완하고 정부조직법 개정 등 관련 입법을 서둘러 논의해 주길 바란다.

최성락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전 식약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