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AI 법제화시 고려해야 할 것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한달밖에 안 되었지만 인공지능(AI) 관련 법안이 벌써 5건이나 발의되었다. 상당히 고무적이지만 법안 내용이 AI 글로벌 경쟁의 생존 해법으로는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AI 기술·산업의 진흥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규제가 혼재되어 있다. AI 진흥과 규제를 모두 규정으로 만든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와 달리 진흥과 규제를 분리했다. 진흥과 규제를 하나의 법률에 담는다면 일견 진일보한 형태 같지만 실상은 비효율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진흥과 규제 두 목표가 상반된 성격을 띠고 있어 상충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며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진흥과 규제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전문가일 수 없기 때문이다.
AI 산업진흥을 위한 법제화에 우선순위 두어야
대안으로 위원회를 2개 설치하는 혼합형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미국과 EU처럼 두 규정을 분리운영하는 것이 각자의 목적에 집중할 수 있어 더 효과적이다. 이 점에서 AI법을 진흥과 규제로 분리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순서는 미국과 EU에서와 같이 진흥규정을 먼저 만들고 그 후에 규제규정을 만들 수도 있지만 병행해도 무방하다. 규정의 형식은 미국과 EU가 상이한데 미국은 진흥규정은 법률로 규제규정은 행정명령으로 운용하는 반면 EU는 진흥규정은 정책의 한 형태인 계획(plan)을 채택했고 규제규정은 법률로 제정했다. 법률은 강하고 경직적인 반면 정책은 유연하다는 점에서 미국은 규제를 유연하게 EU는 규제를 강하게 운용하려는 의도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챗GPT 출시를 계기로 미국의 세계 지배력은 더 강화되고 있으며 그 뒤를 이은 AI 10대 강국들은 선두권 진입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6위권 수준인 우리나라도 이 경쟁대열에서 뒤처지지 않고 선두권으로 올라가려면 AI 기술과 산업진흥을 위한 강력한 AI 법제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점에서 신속한 AI 법안 발의는 고무적이지만 문제는 법안 내용이 산업의 추진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일로 현상을 타파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법안 내용을 보면 인재양성과 기술지원을 비롯해 창업의 활성화와 수요산업의 AI 융합촉진 등 산업생태계 관점의 AI 육성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AI에 가장 중요한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직접 구축사업을 수행하게 돼 있다. 문제는 이러한 좋은 내용들을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할 관련부처들의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결집력이 미흡하다는 데 있다. 관련부처들의 적극적 협력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강력한 추진력을 담보할 수 있도록 추진체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미국의 사례 벤치마킹해 추진력 강화해야
이상적인 추진체로서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집행했던 ‘플랫폼 인더스트리 4.0’ 조직을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이다.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은 관련부처들과 참여집단의 대표가 참여하는 지도부와 산학연 추진팀으로 구성된 워킹그룹을 비롯해 연구위원회와 조정위원회 등 체계적이면서 수평과 수직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플랫폼 조직을 채택하고 있다.
독일모델을 도입하는 경우 AI 플랫폼 조직과 관련하여 산업부 보건복지부 교육부의 적극적 참여가 성공의 필수요건이다. 이를 통해 AI 산업과 제조업 바이오 교육 등 AI 수요산업의 선순환 상생협력을 달성하고 데이터의 공동사용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성과를 거둘 수 있다. AI 융합은 중국이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라 중국 벤치마킹도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2020년에 제정된 미국의 ‘국가AI이니셔티브법(NAIIA)’을 벤치마킹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 전체의 AI 기술개발 정보를 확보 평가하고 기술기관들의 협의체를 구성하며 기업자문팀을 구성하여 정책의 내용과 효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정책성과를 제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