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노동자 “안전교육 없었다” … 경찰 사실관계 수사
주요 피의자 소환 가능성 … 유족들 “진상 규명, 행·재정 지원” 요구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화재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안전교육이 없었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유족들은 협의회를 구성하고 사고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불이 난 24일까지 아리셀에서 근무한 이들이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고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경찰은 이날까지 20여명의 참고인을 불러 화재 당시 상황과 평소 아리셀의 근로 체계, 안전 관리 등 전반을 조사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도 안전교육이 미비했다는 취지의 진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은 지난달 26일 아리셀 등에 대한 강제수사로 압수한 서류와 전자정보 등에 관한 분석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압수물 분석을 마치기까지는 2~3주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박순관 아리셀 대표 등 주요 피의자가 소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므로 참고인 진술 내용 등에 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진상 조사에 ‘유족 추천 전문가 참여’ 요구 = ‘아리셀 화재 사고 유가족협의회(협의회)’를 구성한 유족들은 지난달 30일 오후 화성시청 추모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화재 사고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하며, 유족에 대한 지원 또한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참사는 고용노동부, 화성시, 경기도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면서 “유족에게 필요한 재정적, 행정적인 지원 대책을 제시하고 협의하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는 산재 사망자와 피해자에 대한 대책안을 즉시 마련해서 협의회와 협의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진행한 한상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정책기획국장은 “참사 희생자 23명 중 부부가 있어 22가구로 집계 중인데, 이후 연락이 잘 안되던 라오스 국적 희생자 유족과도 연락이 됐다”며 “이날 기준 19개 가정이 협의회에 소속된 상태”라고 말했다.
협의회는 또 진상 조사에 관한 내용이 유족들에게도 투명하게 공유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와 회사는 유족 협의회에 사고의 진상 조사 진행 상황을 매일 공유해달라”며 “중대재해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에 유족 협의회가 추천하는 전문위원의 참여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회사측 연락 없어” =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아리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유족들이 직접 발언에 나서기도 했다.
한 유족은 “아리셀에 1년 넘게 근무했는데 사고 당일까지도 그렇게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을 몰랐다”고 말했다.
아리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밝힌 다른 유족은 비상구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걸 아예 몰랐다. 얘기를 안 해줬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아리셀에서는 제품을 출구 쪽에 있는 팔레트에 다 올려놔 막아두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서 출구를 찾기가 더 어려운 것”이라며 “안전 교육을 받은 것도 없다. 출근할 때부터 앉아서 일만 했다”고 주장했다.
협의회측은 “아리셀 대표가 지난번에 유족 대기실에 찾아와 사과하는 척하는 액션만 취하고 간 뒤 일체 연락이 없었다”며 “아리셀 대표가 직접 진실된 대안을 가지고 논의할 테이블을 만들기 전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를 치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안전관리시스템, 노동자 의견 반영해야” = 또한 아리셀이 3년 연속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된 사실도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실에 따르면 아리셀은 지난 2021년 2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 인정 심사를 신청했고, 인정 기준인 70점을 웃도는 81점을 받아 같은 달 우수사업장에 선정됐다.
이어 2022년과 2023년에 이뤄진 사후 심사에서도 각각 88점과 75점을 받아 지난 2월까지 3년간 우수사업장 자격을 유지했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이 스스로 유해·위험 요인을 찾고 개선하는 과정으로, 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가 참여하는 위험성평가를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박 의원은 “위험성평가를 비롯해 산업현장의 안전관리시스템에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모 발길 이어져 = 한편 지난달 30일 오전 사망자 중 1명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사망자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인식은 유족 뜻에 따라 언론 등에 알리지 않은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또 화성시청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잇따랐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최대호 안양시장, 조용익 부천시장 등 정계 인사들도 분향소를 찾아와 헌화하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화성시에 따르면 추모 분향소가 차려진 지난 25일부터 이날 오후 4까지 엿새간 920여명의 조문객이 찾아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