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참패 후에도 버티는 용산의 ‘3가지 기대’
①거대야당 - 민주당 의원들 사법리스크로 의석균형 회복
②당정관계 ③공직기강 - “임기 3년이나 남았는데” 다잡기
“가랑비에 옷 젖어” 지지율·국회 변수 … 윤, 정무장관 신설
집권세력이 역대급 총선참패로 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한 지 석 달이 다 돼 가고 있다. 그러나 용산 대통령실은 아무 일 없었던 듯 차분하다. 악조건을 피할 수 없지만 버텨내다 보면 국정동력 회복 기회를 잡으리라는 기대가 읽힌다.
◆눈에 띄는 변화 없었던 용산 =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회담, 출입기자들과의 취임 2년 기자회견으로 깜짝 이벤트를 열었지만 이후 눈에 띄는 국정기조 변화는 없었다. 시장 방문, 민생토론회 등 ‘하던 것’을 더 열심히 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당선인 워크숍에서 “지나간 건 다 잊자”고 했고 당선인들에게 축하맥주를 따라줬다.
대통령 본인과 관련된 돌발악재에 대응하는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내용에 대해 대통령실은 지난달 27일 “멋대로 왜곡”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실제 발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2년 전 ‘바이든 날리면’ 논란, 이후 갖은 ‘격노’ 논란 때마다 대응하던 방식과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총선 이후 정부여당이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 엉뚱한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게 현명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당심이 거대야당 앞두고 당정갈등 바라겠나” = 대통령실의 ‘버티기’ 기조를 지탱해 주는 요소는 대략 3가지로 파악된다.
먼저 야당 의원들의 사법리스크다.
현재 야당에서는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의혹을 비롯해 20대 대선 당시 허위사실 공표, 위증교사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 자녀 입시비리 및 감찰 무마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이른바 ‘돈봉투’ 의혹을 받는 의원도 2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여기에 최근 검찰과 경찰이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 조사에 들어가면서 다시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친윤계 야권 고위인사는 “수사 및 재판결과를 봐야겠지만 적어도 12명의 야당 의원들이 직을 내려놓을 것으로 본다”며 “그 자리를 잘만 채우면 개헌선·거부권 재의결도 위태로운 지금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당정관계 강화에 대한 기대다.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에 현재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기류가 흐르고 있지만 곧 친윤계 대표로 대세가 바뀔 거라는 시각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이 위기에 처하면 당원들은 파격적인 변화를 택하기도 하지만 대통령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아직은 이르다”며 “당원들이 거대야당을 앞두고 대통령과 분란을 일으킬 정치 초보 대표를 바라겠느냐”고 봤다.
여기에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이상 남았다는 사실은 공직사회 기강 유지에도 플러스요인이라는 분석에도 힘을 싣는 모습이다.
◆윤, 정무장관에 얼마나 힘 실어줄까 = 그러나 변화노력 없이 기대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판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 제기된 대규모 대통령 탄핵청원, 각종 격노 논란, 저조한 지지율 등 윤 대통령을 옥좨는 악재들이 폭탄처럼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소장은 “보이지 않던 리스크들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 당장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총공세를 막을 수 있을는지 의문”이라며 “낮은 지지율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돌부리에 넘어질 수도, 가랑비에 옷이 젖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1일 정무장관직 신설을 추진한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여야에 전달하고 소통하는 역할이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야당과의 소통 강화를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이달 중 부총리가 장관을 맡는 인구전략대응기획부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정무장관직 신설안도 포함된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현재 이름으로 도입된 정무장관은 김대중 정부 때 폐지, 이명박 정부 때 ‘특임장관’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가 박근혜 정부 때 다시 폐지됐다. 여권 관계자는 “없는 것보다는 나은 자리지만 야당 대표가 누구냐, 대통령이 얼마나 책임과 권한을 주느냐에 따라 성과가 다를 것”이라고 봤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